5분의 브루잉, 10년의 버퍼링

by cheh

유독 맛있는 수제 맥주를 마시고 들어온 날, 역시나 집에 오니 너무너무 몸이 춥다. 씻지 않은 몸이라 이불 속에 쏙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럼에도 바로 뜨거운 물로 샤워하지도 않고, 한참을 집 안 여기 저기 서성인다. 곧 씻을 것처럼 외출복 한꺼풀을 벗고 선채로 또 한참 시간을 보낸다. 양치도 하고, 소파에도 누워보고, 춥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보일러를 킬까 전기장판을 꺼낼까 하다가 결국 뜨거운 물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샤워하고 나서 먹을 따듯한 차도 끓여놓고, 화장실의 습기가 온 집안에 배지 말라고 창문도 좀 열어놓고 한참 샤워를 했다. 샤워하기 전에는 씻고 이불 속에 쏘옥 들어가야지, 차고 촉촉한 발을 덮힐 핫팩을 만들어서 이불 속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막상 샤워를 하고 나니 좀 살 것 같은지 이불 속이었던 행선지가 거실의 암체어로 옮겨간다. 읽어내야 할 책이며 필기구를 잔뜩 들고 암체어 옆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막 만들어놓은 결명자차를 챙기러 부엌으로 갔다.

세상 더없이 힘차게 모든 에너지로 바글바글 끓을 때만 해도 옅던 찻물이, 샤워를 하는 동안 뜨거운 물에 브류잉되면서 더 짙어졌다. 입안의 속살을 익힐 것처럼 뜨거웠던 온도도 마시기에 딱 적당한 따듯함으로 변해있었다. 선채로 차를 한모금, 두모금 맛보다가 꿀꺽꿀꺽 원하는 만큼 양껏 한참을 마시며 뜨겁던 차를 생각한다. 온 에너지를 바글거리며 발산하던 순간을 생각한다. 어째서 에너지가 폭발할 때는 오히려 무르익지 못하는지, 에너지도 좀 풀어지고 수용받기 좋아질 때쯤 색이 더 진해지고 깊이가 생기는지, 타이밍은 왜 지연되는지 생각한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공상가도 몽상가도 아닌데, 나보고 생각이 많단다. 그래서 얼른 애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애 키우는 데 정신을 쏙 빼놔야 한다고 누군가 되지도 않을 조언을 했었다. 생각이 많아서 괴롭고, 자꾸 따져보는 데 에너지를 쓰다가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을 골라버리는 나 자신을 알아차렸다. 생각을 멈추고자 불교 공부도 해봤다. 지금과 여기에 집중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아무리 배워봤자 그 전략들은 생각이 많아서 오는 괴로움에 대한 대증요법에 불과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게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아닐지라도.

계약직을 끝내고 직장을 옮기게 되었을 때 앞의 계약직 기간 동안 만났던 분들이 너무 그리웠다. 다들 먼저 퇴근을 하고 조용한 직장을 뒤늦게 가만히 나오면서 아무도 없는 그 퇴근길에서 눈물이 났다. 출근 며칠 만에 흘리는 그 눈물을 어떤 선배에게 들켰다. 그분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분은 아직도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분으로 남아 계신다. 그 뒤로도 우연찮게 그분에게 이런저런 고민 상담을 하곤 했고, 그분이 이끄는 함께 책을 읽는 모임에 끼어 들어가기도 했다.

그 선배로부터 책을 읽는 것보다, 혹은 책을 읽는 것만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산책을 하며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 혼자 책을 읽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난 뒤로 일부로 무언가 딜레이 되는 순간, 생각에 생각을 더 하는 방법을 내 삶에 적용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또 다른 대증요법을, 자기계발 서적의 방법들을 내 삶에 써먹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멋진 깃털들을 주워 모아 제 몸에 붙이려는 까마귀처럼, 나도 남들의 멋져보이는 겉껍질을 무던히 내 몸에 붙이려고 노력했다. 알맹이 속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생각과 감정으로 바깥쪽까지 물들어야 했었는데, 내면은 그대로면서 바깥부터 칠하려고 노력했으니 색칠이 오래지 않아 들뜨고 벗겨졌다.

원래의 나는 혼자서는 책을 못 읽는 사람이지만, 내가 바라는 나는 책을 읽고 좋아하고 싶은 사람. 원래의 나는 게으르면서도 열심히 내면을 안 채우면 허무하다고 느끼는 사람이지만, 내가 바라는 나는 삶의 여-유&휴식 셋트와 노력&성과 셋트를 적절히 균형맞추는 사람. 그리고 운동이 노력이 아닌 휴식 부분에 들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안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 아직 안 이루어졌고 또 어떤 모습이 이미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렸으니, '내가 바라는 나'와 '그대로의 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이렇게 저렇게 노력을 해본다. 외양을 치덕치덕 꾸며서 '그대로의 나'를 감추는 방법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아니까, 여러 가지 장치들을 써서 '내가 바라는 나'와 '그대로의 나'를 일치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차가 우러나는 시간 5분. 그 짧은 5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저번 날의 생각은 능력, 기술, 지식과 자기효능감, 자존감이었다. 오늘의 생각은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것에 대한 고찰. 포기와 체념이 불가능을 받아들이는 거라면, 불가능을 가능한 것이 되도록 추구하는 것이 괜찮을까에 대한 생각. 이룰 수 없는 회춘과 유전적 조건을 뛰어넘으려는 키 같은 불가능의 범위와 잠재력을 발현하는 불가능의 범위에 대한 생각. 잠재력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니 그 존재하지 않는 능력을 실제 실력으로 만들어 가능의 영역으로 이끌어온다는 것에 대한 생각. 어디까지 포기/체념해야 할지 또는 절대 놓지 말고 추구해야 할 것인지, 잠재력이라는 것 자체가 미지의 영역이라는 생각.

오늘의 주제, '불가능과 가능, 경험에서 오는 체념과 근본 없는 신념' 생각을 하다가 어느정도 식은 차를 다시 한모금 더 마신다. 이런저런 생각이 다시 공기 속으로 흩날리면 참 허무한듸. 그 생각들을 엮어서 또 엉기설기 그물을 만들면 때론 촘촘한 논리로 직조하면 덜 허무하다. 그리고 그 직조물로 물고기를 낚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잘 쓰이면 참 기분이 좋다.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한번 읽히고 소비되는 생각이 되지 않도록, 무언가 튼튼하게 그 위에 세워질 수 있도록 그 무언가를 뒷받침해 주는 견고한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십년간 무엇을 했나 싶게 멍해지는 현실자각 타임이 오면, 내 과거를 부정하기보다는 내 과거 덕분에 남들과 달리 갖게된 플러스 요인을 찾아본다. 나의 지연된 십년이 좀더 다양한 경험과 결부되어 현재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함과 개성을 줄 수 있기를, 그리고 이제 그만 딜레이를 멈추고 다음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남들보다 꼭 십년을 더 살아야지 하고 어쩔 도리없는 시간을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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