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사각 Feb 26. 2024

취중진담

연애와 갈등

W가 활동하는 밴드에서 밸런타인데이 행사를 열었다. W는 거의 매주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준 리더 급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친밀하다.


주최를 하는 리더 중 여자 한 분이 그동안 남성분들의 봉사에 ‘보은’을 하겠다며 행사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S는 발끈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저에게 꽃을 사주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요. 그 남녀가 커플을 만드는 행사에 참여하시면 안 되죠.”     


S는 장난처럼 돌려서 말했으나 밴드에 들어가 보니 W는 기어이 참석 버튼을 누른 상태였다.

그리고 눈치 없게 S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파티 벙 같이 가자.”     

“전 안 갑니다.”     

“ㅠ”      


S는 부글부글 끊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며칠을 보내야 했다. 괜히 전화나 문자로 화를 터트렸다가는 큰 싸움이 날 수도 있으므로 자제했지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불쾌감 때문에 힘들었다.      


도대체 남녀 짝을 맞춰서 커플을 만들고자 하는 모임에 무슨 이유로 참석을 한다는 겐가? W는 그들 대부분과 가깝고 친구 같은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 모임에는 새로운 사람들도 늘 등장한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한 친목 이상일 수도 있다. 게다가 뾰족한 레이다를 세워서 보니 부탁을 했다는 여성 리더 분도 은근히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며칠 동안 문자에 답을 느리고 냉담하게 한 후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밸런타인데이 모임에는 왜 가시는 거죠? 저랑 만나고 있는데 그 모임에 가는 건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거 때문에 화가 난 거로군. ㅠ’     


‘저는 그 밴드 모임에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행사도 아니고 남녀 짝 맞춰서 만나는 모임에 간다는 건...’ S는 용암처럼 분출하는 화를 누르고 애써 문자를 보냈다.    

 

‘속상한 일이네요.’     


얼마 후 W는 급한 일이 생겨서 참석 못하겠다고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제야 S는 화가 누그러져서 W와 만나서 뜨거운 화해를 했다.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떨린다. 화장을 새로 고치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주변을 정리하고 아직도 설렌다. 카페인에서 오는 긴장감인가 헷갈리기는 하나 그를 만나기 전에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면접을 기다리는 지원자와 같은 마음? S는 조금씩 떨리는 것 같은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게 사랑인 걸까?       

   


설 날 S는 어머니의 집에 방문했다. 설 연휴 전날 만났으니 명절은 각자의 가족과 보냈는 걸로. 명절 마지막 날, W는 회사 사람들과 저녁에 술자리가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밤 11시 30분경에 W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취한 목소리였다. 반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 들을 중얼거리다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대화. 전화를 하면서 평소 생각하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S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 난 사랑한다고는 안 했어. 좋아한다고 했지.”     

“....”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발언이 아니던가? 뭣이 어쩌고 어째? 아무리 취했다는 걸 감안한다고 해도 영 기분이 나쁜 말이었다.


취중 진담이라고 마음속에 있는 진심을 꺼내놓은 것인가? 다음 날 오후에 연락이 되어서 문자를 주고받았다.   

   

S: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걱정이 됐어요. 취한 것 같아서.   

  

W: 음...     


S: 괜찮아요?^^   

  

W: 안 괜찮음..ㅠ     


S: ㅋㅋ  

   

W: 죽것소~     


S: 점심 맛있게 드세요. 이제 술도 적당히 드시고요. 취중진담인가.. ㅎㅎ    

 

W: 왜?

   기억이 안 나. 창피...ㅠ     


S: 반 정도만 알아들을 수가 있었어요. 나중에 취조를 좀 해야겠네요. 흠...

   흥! (이모티콘)    

 

W: 취하믄 자꾸 어디론가 전화를 하나봐~     


S: ㅎㅎ 이번 주에는 밸런타인 데이니 제가 밥을 사드리죠. 그리고 취조...     


W: 털어봐야 나올 것도 없어.

    먼지만 풀풀~     


밸런타인데이에 준비한 초콜릿을 주고 냉삼겹살을 먹으며 만나서 취조를 했으나 뾰족한 대답은 없었다.


다만 W의 팔을 베고 누워서 ‘사랑해’라고 말하라는 S의 반복되는 협박에 W는 S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쑥스러워”라고 나지막하게 말할 뿐이었다.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