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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Mar 07. 2024

치질 수술

에구구...

W 오라버니가 급하게 응급 치질 수술을 받게 되었단다. 오후 두 시경에 수술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종합병원에서 검사가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수술을 마치고 종일 금식 상태로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S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오전 공부방 아파트 홍보지를 붙이고 왔고 수업이 없는 날이어서 저녁 시간에 맞춰 가기로 했다.


W는 작은 개인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손목에는 주사 바늘을 꽂은 채 마취를 해서인지 얼굴도 부었다. 수술 하느라 종일 금식 이어서 기운이 빠지고 풀이 죽어 있었다.


혼자 수술을 받았으므로 그 과정을 어머니에게 하루 일과를 알리는 아이처럼 종알종알 말하는 걸 보니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픈 아이에게 엉덩이라도 토닥토닥 해주는 위로를 바라는 간절한 표정.     


눈비가 오는 굳은 날씨였다. 죽집에 가서 호박죽과 야채죽 두 개를 포장해 왔다. 양이 상당히 많았지만 W와 마주앉아서 죽 그릇을 싹 비웠다. 혼자 굶으며 하루를 보낼 상황에 S가 와주어서 W는 고마워했다.    

  

저녁을 먹고 W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하소연을 한참이나 들은 후 여덟시 경이 되어서 S는 집으로 갔다. 주사 바늘을 꽂아 진통제를 계속 맞아야 하고 운전이 힘든 W를 위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와서 종합 병원까지 태워다주기로 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은 후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 일어난 W를 뒤에서 껴안고 잠시 제자리 걷기를 했다. 춤을 추는 것처럼 리듬을 타고. 어린 시절에 아버지 발등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몸무게가 한참이나 나가니 W의 발 위에 올라갈 수는 없겠지?     


어린 아이로 돌아간 듯한 무력한 W의 다리를 주무르며 간호를 하다보니 사랑이 스믈스믈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려고 나오니 온통 눈세상이 펼쳐졌다. 폭설이 내린 아침. 다행히도 어제 저녁에 눈발이 날리기에 전면 유리창에 은박 돗자리라도 깔아두었기에 망정이지.

아침에 유리창이 얼어붙어버리면 녹이는 데 한 세월이 걸린다.      


다세대 주택 앞에 놓여 있는 빗자루를 들고 눈 속에 폭 파 묻힌 차를 쓸어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병원으로 향했다. 큰 길의 도로는 이미 다 녹아있으나 왠지 미끄러질 것만 같아서 눈오는 날은 저절로 거북이가 된다.     

 

W는 퇴원을 하려는 참이었다. 종합병원으로 가는 길에 구경한 눈 세상은 아름답기만 했다. 동네 뒷산에도 습기를 가득 머금은 눈 덕분에 눈부신 상고대가 펼쳐졌다. 병원에서 W의 검사를 마치고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근처 호텔에서 쉬다가 수업을 하러 가기로 했다.      


W의 동네 근처 호텔에 가기로 했는데 그의 지인 중에는 기혼자인데 이 호텔에서 주말마다 애인과 시간을 보내는 이가 있단다. 부인과는 서로 각자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하고 한집에서 지내면서 애인도 따로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별스러운 부부관계가 꽤나 많은 듯하다.      


참, 이해할 수가 없는 관계이지만 오 년이 넘는 기간동안 연애를 계속 하고 있다니 사실혼 관계라는 애인과도 돈독한 사이임에 틀림없다. 그 호텔에 갈까 다른 곳에 갈까 하다가 다른 곳을 예약했는데 실수로 그 호텔로 가고 말았다.


발렛 파킹까지 맡기고 예약 문자를 보여주니 그 옆의 호텔이었다. 문득 창피했지만 소곤소곤 농담을 하면서 다시 호텔을 옮겼다. 호텔 앞에서 오토바이 하나가 멈춰서 빵빵거리며 길을 막았다. 은근히 조롱을 하는 것 같아서 W가 발끈하면서 나섰으나 무서운 세상에 어떤 정신나간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하며 말렸다.      


W와 그간 쓰지 않고 모아 놓은 스타벅스 쿠폰으로 잔뜩 사온 샐러드, 샌드위치, 케익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었다. 발사믹 샐러드 소스도 상큼하고 맛있었다. 금식을 하던 W는 허겁지겁 먹고 나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눈빛을 반짝이며 살아났다.


어제는 다 죽어 가더니만 단순하게도 역시 인간은 아프지 않고 배부르고 등 따수우면 행복해지는구나.      


앞으로 4주간은 금욕 생활을 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아직도 진통제 약을 주사로 투여하고 있으니 절대 안정을 해야 하는 날이긴 하지. 가운을 입고 누워서 W의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다정한 대화를 이어갔다. 공부방 홍보를 하는 시점이어서 상담 전화가 왔다.


상담만 하는 어머님들도 많기에 꽤 많은 상담을 받아도 등록으로는 이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마치 동네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것처럼 상담을 꽤 많이 거쳐야 한다. 매번 상담을 할 때마다 긴장이 되는데 더 담담해 지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고.      


W에게 그동안 겪었던 여러 어려운 상황에 관해서 토로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서로에게 아이가 될 수 있는 관계가 연인 사이인가 보다. 아이였다가 어머니 였다가 역할을 바꿔가면서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한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호텔에는 값비싼 훌륭한 안마기가 있어서 안마를 두 번 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W와 헤어져 수업을 하러 갔다. W의 입을 가볍게 맞추고 헤어졌다.      


얼른 나으세요. 오빠. 그래야 또 놀러가죠 (하트하트)          

눈 오는 날 병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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