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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Feb 29. 2024

주말여행

즐거워~

W: 주말에 뭐 해?

S: 글쎄요. 생각해 봤어요?^^

W: 여행 가자. 오늘 출발?

S: 어디로 가요?^^

W: 포천?

S: 몇 시에 출발? 포천 좋네요 ^^

W: 2박 펜션을 알아보는 중... 취사 가능한

S: 음... 그럼 몇 시에 출발하는지 이따 알려주세요 ^^

W: 넵. 일단 출근 중     


S는 별 계획 없이 가볍게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발길 닳는 대로 가보자는 W의 제안에 따라서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떠나는 여행에 흥분이 됐다.      


W도 신이 나서 1박에서 2박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밤에 야간 불빛 축제 가기 위해서는 이틀의 시간이 필요하단다. W는 데이트를 꼼꼼하게 계획하고 준비를 해오는 편이었다.      


밤 열 시경에 포천 불빛 축제장에 도착했다. 십여 년 전에 왔던 기억이 얼핏 났지만 그동안 꽤 많이 변했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트랙터를 타고 정상까지 가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핑크뮬리 공간이 펼쳐졌다.


트랙터는 심하게 흔들려서 S와 W는 손을 꼭 잡고 엉덩방아를 찧고 부딪치며 웃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승차감이 너무 떨어져서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로맨틱했다. 경쾌한 음악이 들려오고 S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기운이 가득 찼다. 우리 둘만의 신비롭고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


펜션으로 돌아와서 와인과 함께 먹을 카나페를 만들었다. W는 간식을 잔뜩 사오고도 급히 준비하느라 몇 가지를 놓친 것을 푸념했지만 마침 S는 참치캔과 사과를 가져왔다.


가게에서 산 크래커에 치즈와 참치와 사과를 한 조각 올려서 카나페를 만드니 모양이 부실하긴 해도 맛은 좋았다.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카나페를 만드는 순간이 더 포근하고.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소맥을 마신 터라 S는 흠뻑 취하고 말았다. S은 과거의 슬픈 감정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W는 당황해서 S를 안고 위로를 하려고 했으나 S는 감정의 눈물바다로 깊이 들어가고 말았다. 계속 달래려던 W도 옆으로 돌아누운 S에게 마음껏 울라 하고 잠이 들었다.      


펜션의 전경은 구불구불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잔디밭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방도 널찍하고 괜찮았으나 펜션의 침대는 어느 십 대 소녀방에나 있음 직한 철제 프레임에 흰 커튼이 드리워져있었다.


어린아이방 같아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더욱 웃기는 것은 사랑을 나눌 때 침대에서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서 계속 삐걱대는 침대라니.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라 자쿠지도 사용이 안 되어 함께 욕조에 들어가서 반신욕을 즐기곤 하는 S와 W는 구시렁거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쿠지에서 경직되고 피곤한 몸을 풀면 참 좋을 텐데.      


다음 날도 W는 정처 없이 철원의 고석정까지 달려갔다가 철새 도래지와 땅굴 탐험까지 가자고 하며 브레이크가 망가진 것처럼 국도를 달렸다. 결국 검은 철새가 대열을 지어서 날아가는 하늘만 간간이 구경하고 땅굴 근처도 가지 못했지만 차 안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오갔다.


이 근방에서 군복무를 한 W는 한 맺힌 군대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간밤에도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에 푹 빠져서 몰입을 하시더니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버랩되는 이야기들. 서로에 관해서 점점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시간.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서 산정호수로 가기로 했다. 돌솥비빔밥을 먹고 산정호수 둘레길을 한 바퀴 걸었다. 아직 얼음이 얼어 있는 호수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90년대 변진섭, 이문세 노래가 흘러나오니 학창 시절이야기로 옮아갔다.


우리의 학창 시절에는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 등을 코팅한 책받침을 가지고 다녔지. W는 피비 케이츠를 좋아해서 책받침을 사 모았다고 한다. S는 소피 마르소가 나왔던 ‘라붐’이라는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W는 야성적인 여인을 좋아하는군.     


호숫길을 한 시간여 걸은 후 전통 찻집에서 쌍화차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S는 뒤늦게 스노우 앱에 빠져서 W와 장난스러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W는 평소 웃음이 많지 않은데 웃을 때는 꽤 잘생겨 보이고 귀엽다. 그의 말로는 웃을 때 너무 매력적이라 뭇 여성들이 반할까 봐 잘 웃지 않는 거라나.      


요즘 S에게 ‘봉사하느라’ 애쓰신 W님은 얼굴살이 점차 빠지고 있었다. 뾰족한 턱선이 살아나니 점점 인물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제 눈에 안경인지 사랑의 힘인지 S는 “잘생겼다.”라는 말이 연신 나온다. 이러니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는 건가.   

    

두 번째 날은 마사지 오일을 바르며 유튜브에서 배운 전신과 발 마사지를 연습해 봤다. 서로의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마사지하면서 더욱 애정이 샘솟는 걸 느낀다. 조금 더 나가서 다리를 엉덩이 쪽으로 꺾으면서 요가 동작도 해보고 깔깔거리며 밤은 깊어갔다.      


마지막 날에는 비가 오려는 기미가 보였다. 연 이틀 여행으로 피곤하기도 하고 파주 출렁다리를 건너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여행은 서로를 더 가깝게 연결해 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때로는 흔들려도 손을 꼭 잡고 건너가야 할 길. 앞으로도 함께 갈 여행을 계획하면서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을 하나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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