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속으로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수업을 꼬박꼬박 거의 빠지지도 않고 하는 데 무슨 영통(영상통화)까지 하자는 거지.' 하는 생각이 스쳤기에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거절해 보려 했다.
“ 영통은 oo이 남자친구랑 해야지. 아니면 사촌동생 oo이랑 하던지.”
아쉽게도 이 어린이는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 다른 지역에 사시는 할머니, 사촌동생 들도 오늘 다들 시간이 없다고 했나 보다. 아무리 피해 보려 해도 방법이 없어서 영통이란 걸 저녁 8시에 하기로 약속했다. 카톡이면 됐지 굳이 영통까지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인과도 영통을 거의 하는 일이 없다. 일단 그렇게 얼굴을 반드시 마주 봐야 하는 절절한 이유로 통화를 하는 사람이 없기에. 엄마와도 용건이 있을 때만 가끔, 아주 드물게 카톡을 주고받거나 통화를 하거나 한다. 용건만 간단히!
그리고 요즘 내 얼굴에 나날이 자신감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밥 먹듯이 찍었던 셀카도 얼굴이 더 이상 마음에 안 들어 그만둔 지 오래고, 저녁에 들어오면 화장부터 싹 지우는데 쌩얼로 통화하기도 그렇다. 게다가 방 안 풍경도 일부 나온다면 이불도 깔끔하게 개야 하지 않나? 아, 귀찮다! 이렇게 늘 쿨하다고 주장하면서 이중적으로 까탈스러운 인간이다. 이유도 가지가지.
집에 와서 영통을 잠시 잊어버리고 화장을 지우고 쉬고 있었는데 역시나 잊지도 않고 카톡이 왔다.
“샘, 지금 영통해도 돼요? 카톡으로 해요 전화로 해요? ”
'기억력도 좋은 어린이네.' 이미 약속을 했으니 영통을 시작했다. 이 어린이는 방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었고 나는 누우면 얼굴에 턱살도 잡히고 할까 봐 책상머리에 얌전히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딱히 긴히 나눌 대화도 없는 데 아이가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무도사가 되었다가 소녀도 되었다가 하면서, 신기방기해서 웃고 떠들고 했다. 이 어린이 덕분에 신문물에 자주 접하는 편이다.
한 십 분이나 지났을까? 팔도 아프고 대화주제도 떨어지고 해서 화장실을 핑계로 도망갔다. 다시 돌아오라며 눈물의 이모티콘을 보내는 어린이에게 내 사랑을 확인시켜줄 하트를 날리면서.
이 어린이의 어머님은 매우 바쁘셔서 야근을 많이 하시고 밤늦게 들어오신다. 혼자 있는 어린이가 심심하니 여러 사람들과 자주 영통을 하는 것 같다. 유독 사람에 대해 정이 많고 사교성이 높기도 하고. 가끔 내 딸이 아닌가 싶을 만큼 애틋하고 비슷한 점들이 있다. 배달된 저녁을 먹고 내내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입장에서 보니 마음이 짠해서, 앞으로도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영통을 종종 해줘야겠다.
그나저나 이 어린이는 참으로 사랑스럽다. 올해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로맨틱한 문장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면 자주 “샘, 몇 분 더 있을 수 있어요?”라고 물으며 내 발목을 붙잡는데 시간이 없을 때는 곤란할 때도 있지만 여유로울 때는 얼마간 머무르기도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샘과 1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하, 이 말을 뜨겁게 연애하는 남자에게 들었어야 마땅하지만 그 순간 감동을 받아서 잊을까 봐 적어놓았다. 이렇게 간절히 내 존재를 원하는 사람이 이 황량한 세상에 있다는 게 감사하지 않은가? 애절하다. '일분이라도 더'라니.
이 어린이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날들의 다정다감했던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면, 언제라도 미소가 피어오를 것 같다.
유투버처럼 수업하는 내내 동영상을 찍으며 공부하던 날, 둘이 엉뚱한 춤을 추며 깔깔거리던 순간들.
엘리베이터까지 뛰어나와서 마중하던 아이.
코 앞까지 왔는데 언제 오냐 전화하던 일.
솜털같이 보송보송하고 따뜻했던 날들.
oo아, 앞으로도 우리 다정하게 영통을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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