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를 마치고 지극히 주관적인 덧붙임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관련 글 : 「나의 청산, 푸른 아프리카」, 「Day1,2. 드디어 여행의 시작」
관련 매거진 : [푸른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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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
첫날 : Day8. 입김이 호호 나왔던 밤
이튿날 : Day 9.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
마지막날: Day 10. 아쉐날링 세렝게티
세렝게티에 다시 갈래?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글쎄.. 내 대답은 "글쎄"다.
세렝게티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로망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들. 작열하는 태양과 그 붉음이 닿는 생명의 땅은 … 이하 생략.
세렝게티까지 가서 열심히 찍어온 나의 사진을 본 내 친구가 말했다. 사진이 지쳐 보인다고. 그도 그럴 것이 내 사진들은 다 누리끼리 시들시들했다. 풀도 누렇게 떠있고 동물들은 그 누런 풀들을 뜯어먹고 있다. 끊임없이 풀풀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그나마 있던 색의 채도도 낮춰버렸다. 또 너무 넓은 탓에 우리는 "동물을 찾아다녀야" 했다. 바싹 마른 오프로드를 달릴 때마다 들썩이는 차에 아파오는 엉덩이와, 풀썩 일어나 창문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들어와 우리를 덮는 모래먼지. 우리는 하루 종일 달렸다.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의 세렝게티가 생각보다 볼 것이 없더라"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신기한 모양의 새둥지를 달고 홀로 서있던 나무 한그루, 이사를 하던 엄마와 아기 표범, 캠핑장을 멋대로 돌아다니던 원숭이들, 지평선 너머로 지던 태양… 사진에는 그 모습만 담겼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때의 그 감동도 함께 남아 지금도 벅차다.
다만 "굳이" 세렝게티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세렝게티 말고도 많은 국립공원들이 있다. 나의 여행이 언제인지, 어떤 것을 위주로 보고 싶은지, 어떤 체험을 하고 싶은지 등을 고민해보고 상상해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생각보다 많다. 나는 세렝게티, 응고롱고로 분화구(Ngorongoro crater), 잠비아의 사우스 루앙와 국립공원(Luangwa national park), 보츠와나의 쵸베 국립공원(Chobe national park)을 다녀왔다. 몇 안 되는 곳이긴 하지만 자연스레 각각 비교를 하게 됐고, 직접 가본 곳에 대해서만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써보려 한다.
- 언제 갈까?
아프리카는 대륙이다. 엄청 큰 대륙이다. 지역마다 계절이 다르기 때문에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가기엔 언제가 좋다!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세렝게티가 있는 탄자니아 위주로 간단히 써보자면, 나는 세렝게티를 7월 중순쯤 갔다. 많은 걸 고려해서 짠 일정은 아니고 그냥 방학에 맞춰서 간 것인데, 세렝게티 사파리를 하기에 딱 좋은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탄자니아 북부 : 세렝게티 국립공원, 응고롱고로 분화구 등
탄자니아 남부 : 셀루스 동물보호구역 등 (Selous Game Reserve)
건기 : 동물들이 물가에 모여있고, 날씨 또한 우기에 비해 덜 덥고 습하지 않아 좋다.
우기 : 길의 상태가 좋지 않고 동물들이 넓게 퍼져 수백 마리의 동물이 한데 모여있는 장관을 보기 힘들다.
2월-3월 : 탄자니아 북부로 향하는 동물들의 대이동을 보기에 좋다. 번식기라 귀여운 아기동물도 볼 수 있다.
3월-5월 : 탄자니아 북부 우기.
6월-11월 : 탄자니아의 건기.
11월-5월 : 탄자니아 남서부 우기.
- 동물 쉽게 많이 보기?
동물을 보기엔 응고롱고로 분화구나 쵸베 국립공원, 루앙와가 훨씬 좋았다. 세렝게티에 비해 면적이 작기 때문에 동물들이 밀집되어 있어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온갖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른쪽에는 기린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품바가, 차 앞쪽 길은 얼룩말이 막고 있는 상황이 꽤나 흔했다. 잠베이지강 보트 사파리도 추천한다. 코만 내놓고 수영하는 코끼리, 햇빛을 쬐고 있는 악어를 정말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물 위를 동동 떠다니는 코끼리 똥도 거의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그렇지만 여러분 중 아무도 만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음) 거리에서 원없이 볼 수 있다. 자세한 이야기와 알차게 건진 사진들은 나중에 잠비아, 보츠와나 여행일기에서 풀어놓겠지만 일단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 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세렝게티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솔직히 동물은 어느 국립공원이든 많다. 동물이 많으면 좋다기 보단 내가 볼 수 있는 동물이 많아야 좋지 않을까.
- 열악한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는 야생의 초원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 매우 유명한 관광지다. 곳곳에 쉼터도 잘 마련되어 있고, 화장실에 휴지도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아프리카에서 내가 갔던 대부분의 화장실엔 휴지가 없었다. 주유소 화장실에도 휴지가 없어서 개인 휴지를 챙겨 가곤 했는데 여기 세렝게티 한 가운데에 있는 화장실에는 휴지가 있다!
캠핑장도 꽤나 잘 갖춰져 있다.
"세렝게티 캠핑장은 세렝게티 초원 한 가운데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건물이 딱 두개 있다. 하나는 식당, 하나는 화장실 겸 샤워실. 우리는 그 근처 양지바른 곳에다가 각자의 텐트를 세웠다. 울타리라고는 10cm도 안 되는 높이의 돌담..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마치 이웃 밭과 우리 밭을 구분하기 위해 쭉 깔아 놓은 돌처럼 되어 있을 뿐. 초원에 방목된 우리들. " -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 中
나는 지난번 여행일기에서 세렝게티 캠핑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쵸베 국립공원에서의 캠핑에 비하면 세렝게티 캠핑장은 나름 갖출 건 다 갖춘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적어도 건물과 10cm짜리 울타리가 있었으니까. 쵸베 국립공원에서 캠핑을 할 때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샤워실, 식당, 울타리는 커녕 화장실도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텐트를 치는 동안 다행히도 우리의 화장실이 만들어졌다. ㅎㅎ 두어 명의 직원들이 땅을 파고 그 위에 변기를 놓았다. 주위에 천막을 치자 한 평 남짓한 화장실이 생겼다. 내일이면 철거될 임시화장실~ 너무 빠른 시간 내에 대충; 만들어서 그런지 천막 문이 잘 여며지지 않아 손으로 붙잡고 볼일을 봐야 했던 열악한 임시화장실~
이건 지극히 개인의 취향이지만 나는 쵸베 국립공원에서의 캠핑이 더 좋았다. "초원에서의 캠핑"이라는 테마에 좀 더 적합했달까? 좀 더 열악하고, 좀 더 더럽고(샤워를 할 수 없었던 밤)… ^^
캠핑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세렝게티에서 자연 한 가운데 문명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 할 때가 됐다. 돈 얘기
위에서 언급한 세 곳 (세렝게티&응고롱고로, 루앙와 국립공원, 쵸베 국립공원) 모두 트럭투어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약 트럭투어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가게 됐을 때의 가격은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다만 대충 가격대가 이렇다는 것 정도만 쓸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렝게티&응고롱고로 투어는 트럭투어비와는 별도로 500달러를 지불했고, 루앙와 국립공원은 따로 돈을 더 내지 않았고, 쵸베 국립공원은 선택활동(optional excursion)이었던 보트 사파리만 50달러 정도의 추가 비용을 냈다. 루앙와 국립공원에서의 게임 드라이브, 쵸베 국립공원에서의 게임 드라이브와 캠핑이 공짜였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트럭투어 일정의 일환으로 국립공원을 간 우리의 경우엔 따로 돈을 더 내지 않았다는 것일 뿐. 우리 가이드가 우리가 맨 처음에 냈던 트럭투어비 중 일부를 떼어 지불했을 것이다.
세렝게티&응고롱고로 투어 때는 평소처럼 우리가 직접 요리하지 않고 투어 직원들이 요리를 해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식비, 세렝게티 캠핑장 이용료, 가이드 비용 등이 2박 3일간의 투어비에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 2박 3일 중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에 머문 시간은 정확히 따지면 온전한 하루하고 한나절 정도(*참고)였다.
* 일정표 상으론 2박 3일로 나와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루샤에서 카라투로 이동 후 카라투 캠핑장에서 하룻밤, 아침 일찍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로 출발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닌 후 세렝게티 초원에서 하룻밤, 다음날 세렝게티 좀 더 보다가 아루샤로 이동. 즉,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에 머문 시간은 정확히 따지면 온전한 하루하고 한나절 정도였다. - 입김이 호호 나왔던 밤 中
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는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말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러면 세렝게티, 다시 갈래? 음.. 글쎄. 세렝게티를 다시 갈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다면,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
사파리 투어는 세렝게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세렝게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에는 정말 많은 국립공원들이 있고 각각의 매력요소들이 다르다. 다소 가격대가 부담스러운 만큼, 시기, 내가 원하는 경험 등을 고려해서 여러 국립공원을 선택지로 놓고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상 주관적인 주절주절이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