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댄싱스네일 Jan 19. 2022

서로에게 마음의 틈을 내어주기

마트에는 늘 엄마가 있다





어릴 때 마트에 가면 

처음 보는 이의 장바구니 속 야채를 주제로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어른들이 참 신기해 보였다.

어른이 된 나는 낯선 이와의 대화는커녕

제품 홍보를 하는 직원들의 권유가 불편해

이어폰으로 귀를 딱 막고 시선마저 피하려 애쓰곤 한다.

그러다 마트에서 외국산 콩 두부를 집어 든 어느 날,

내 두부를 빛과 같은 속도로 스캔한 후 국산 콩 두부로 바꿔

장바구니에 척 넣어주시는 직원 아주머니를 계기로

그곳에서 마주치는 낯선 호의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홍보에 말려 호구가 될까 지레 겁먹었던 마음에

살짝 틈을 여니 곳곳에서 좋은 오지랖을 만나는 날이 늘었다. 


우리의 자아가 약해졌을 때, 즉 자존감이 낮을 때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타인을 더 불신하고 경계하게 된다.

관계에서 혹여 갈등이나 공격을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를 지킬 자신이 없기에

애초에 높게 벽을 치고 날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으레 '자신을 사랑하라'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과연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만약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타인을 보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의 공통적 결론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관계와 공동체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조지 베일런트 교수를 필두로 72년간에 걸쳐 

추적 연구한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고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 내렸으며,

심리학자 워너는 관계의 힘이 회복탄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런데 현대에는 과도한 노동 시간으로 인한 피로가

친밀한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마저도 어려워질 때가 있다.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취업 준비, 학업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 줄곧 방전 상태다.

가장 소중한 관계에 쓸 에너지가 

바깥에서 다 고갈되어 버린다.

이렇게 빚어지는 친밀한 개인 간의 갈등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다시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타인과의 연대다.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연대가 주는

행복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적인 재난이 생겼을 때

생판 모르는 남을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

과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강원도 대형 산불이나 폭우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돕기 위한 손길에서

우리는 기적 같은 연대의 힘을 만난다.  


사람을 무엇보다 아프게 하는 것도,

그것을 보듬어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아닐까.

사람에게 상처 입은 마음을 닫아만 둘 수도,

누군가의 선의에 마음을 열고

진실하고 애정 어린 온기를 나눌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할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다시 마트 얘기로 돌아오면,

요즘의 나는 종종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먼저 말을 걸어

어느 과일이 더 싱싱한지, 가격은 적당한 건지

묻기도 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이 얘기를 엄마에게 해드리니, 엄마도 길에서 마주치는

내 또래 젊은이가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내 딸 생각이 나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길에서 만나는

중년의 낯선 이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장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을

'마트 엄마'라고 나 혼자 이름 지어보았다. 


요즘 나는 혼자 장을 보러 갈 때도 수많은 엄마들을 만난다.

우리 각자의 마음의 장바구니에 

헐렁한 틈을 조금씩 내보이자. 

그렇게 서로의 '마트 엄마'가 되어주자.

이전 05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것을 찾아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