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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ul 17. 2022

하루하루가 쌓여 병이 될 수도

어지럼증의 시작

8월 20일 금요일

 처음 어지러웠던 것은 7월 말이었다. 살면서 어지럼증을 겪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 느낌을 어지럽다고만 표현할 수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머리가 띵한 증상이었다. 한쪽 귀에 물이 들어간 채로 실내 수영장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라 할 수 있을까.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이 먹먹한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회사 동기가 근처 이비인후과를 가보라고 권유한 것은 어지러운 증상이 3주 정도 계속 이어졌을 때였다. 동기들과 사무실 주위를 산책하는데, 다들 수년간의 직장 생활로 ‘거북목’이 되어 어깨와 목이 아프다고 했다.

 “야, 나는 거북목 때문인지 뒷목이 아파서 밤에 잠도 깼어.”

 실제로 며칠 전 새벽에 뒷목을 폼롤러로 받치고, 깬 잠을 새로 청했던 것이다.

 “이제는 어지럽기까지 해. 사실 몇 주 된 것 같은데, 계속 어지러워.”

 이야기를 들은 한 동기는, 예전에 이석증이 생겨서 어지러웠던 적이 있는데 이석증 치환술을 받고 금방 나았다고 했다. ‘거북목’ 때문이 아니라 귀 문제라면, 고생하지 말고 얼른 이비인후과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계속 지속되는 어지럼증을 견디기가 고통스러웠으므로, 바로 이튿날 회사 근처 이비인후과를 방문하기로 했다.


 병원은 버스로 두 정거장 옆이라 점심시간에 잠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병원 안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맞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접수를 하고 먼저 온 사람들이 빠져나가기까지 기다리는데, 대기실 벽에 적힌 ‘어지럼증 클리닉’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반짝이는 인테리어 때문인지, 곧 어지럼증이 나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40대 초반 정도밖에 안되어 보였다. 편견일지 모르나 흔히 동네 병원 의사에게서 받았던 인상, 즉 오랫동안 비슷한 환자들을 마주하면서 생긴 매너리즘 같은 것이 얼굴에 없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묻고, 증상을 유심히 듣는 모습에서 선생님에게 신뢰가 갔다. 의사는 내 어지러운 증상을 조용히 듣고서 몇 가지 검사를 하자고 했다. 먼저, 청력 검사를 하고 이석증 검사도 해야 한다면서, 검사비가 20만 원 정도 나온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믿을만한 양반인 줄 알았는데, 호들갑 떨어서 검사비 많이 챙기는 스타일인가.’

 나는 최근에 했던 회사 정기검진에서 청력 이상이 없었으니, 이석증 검사만 받고 싶다고 했다. 손쉽게 호구가 될 수 없다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석증 검사는 캄캄한 암실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특수 고글을 끼고 진행됐다. 머리 방향을 바꾸고 침대에 앉혔다가 눕혔다가, 귀에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약 30분 정도의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이 어지럼증이 이석증 때문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귀에 있는 전정신경에 염증이 생겨서 어지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보통 전정신경염이 생기면 초기에 청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고 이후에 다시 회복되는데, 청력검사를 하지 않아서 당장 확진할 수 없다고 했다.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한 청력검사가 사실은 쓸 데 있는 검사였으므로, 똑똑하게 지었던 내 표정에 어색한 미소가 뒤섞였다. 옳은 판단이라고 여기던 일이, 실제로는 오만한 고집일 수도 있는 법이다. 원장은 며칠 뒤에 다시 병원에 방문하라고 했다. 아직 눈동자 떨림이 있는데, 원래라면 어지럼증이 시작되고 일주일 안에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다. 진료를 다시 왔을 때, 안진이 없으면 전정신경염이라 확진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병원을 나와 배고픔을 참고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예상보다 진료시간이 길어져, 사무실 밖에서 점심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어지럼증을 고치지 못했다는 걱정보다, 점심시간이 다 지나갔다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었으므로. 남은 오후 업무가 더 피곤해지겠다는 걱정으로 버스에 오르는데, 등줄기를 따라 땀방울이 흘렀다. 진료를 받기 전보다 심해진 어지러움을 참으면서, 이 와중에 더위까지 먹었구나 했다.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회사 정기 직무이동으로 팀을 옮긴 탓인지도, 노조 대의원으로서 임금협상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먹고사는 일은 그 자체로 버거워서 무탈한 하루하루가 쌓여 뜻밖의 병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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