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신경염이라 진단
8월 24일 화요일
다시 이비인후과에 갔다. 며칠이 지났지만 어지럼증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전보다 더 자세하게 증상을 이야기했다.
“아직 어지러운데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어지러움은 아니에요. 시야가 흔들거리는 정도인데, 머리가 띵한 느낌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내 머리를 붙잡고 휙휙 방향을 바꿨다. 검지 손가락을 눈앞에 들어 올리고 좌우로 움직이면서, 눈동자만 움직여 쳐다보라고 했다.
“음… 안진이 계속 있네요. 만약에 연세가 있는 분이면, 바로 응급실 가서 뇌졸중 검사를 받으라 할 것 같은데… 아직 젊으시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고. 혹시 모르니까 큰 병원에 가보세요. 정밀하게 검사해야 나오는 미세한 이석증이나 전정신경염 일수도 있고, 아주 드물게 뇌에 혹 같은 게 생겨서 그럴 수도 있거든요? 의뢰서를 써드릴 테니 가까이에 대학병원을 가보세요.”
심란한 마음으로 사무실 자리에 돌아왔다. 동시에, 어지러운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큰 병원까지 가야 하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나을 텐데, 괜히 병원에 가서 병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굳이 병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다. 다가오는 불행을 찾아 나서기보다, 예고 없이 뒤통수치는 불행이 더 나을지 몰랐다. 잠깐 주저하다, 결심을 하고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큰 병이 아니더라도 어지럼증의 원인을 확인해보자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전화는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상담 중인 고객이 많아 연결이 지연된다는 음성 메시지만 반복됐다. 휴대폰이 뜨거워지고서 겨우 연결이 됐는데, 가장 빠른 이비인후과 예약은 3주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신경외과 진료도 예약했는데, 신경외과는 다행히 이틀 후에 빈자리가 생겼다고 했다. 신경외과와 이비인후과 모두 진료를 예약하고 전화를 끊었다.
8월 26일 목요일
신경외과 진료 예약은 점심시간 직후였다. 팀장에게 병원을 다녀오라는 허락을 미리 받아서 점심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사무실과 대학병원은 멀지 않아서, 점심을 먹고 병원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동기들과 냉면을 먹었다. 동기들은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물만두까지 시켰다. 냉면도 물만두도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음식 같진 않았지만, 이처럼 더운 날씨에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일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뭐라도 챙겨 먹이겠다는 동기들의 마음이 힘이 되었다. 디저트에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배가 매우 불렀다. 차가운 음식을 먹어서인지, 배가 많이 불러서인지 어지럼증이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평소보다 소화가 잘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원래 있던 통로가 많이 막혀 있어서 본관 지하 1층에 있다는 신경외과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진료실 앞에 있는 자동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대기실에 앉았다. 측정한 결과는 자동으로 진료 기록에 작성되는 듯했다. 깨끗하게 내부 공사가 완료된 곳과는 달리, 신경외과 외래 진료실 구역은 아직 공사 중인 것 같았다. 일렬로 위치한 4~5개의 진료실 앞 대기실은 환자들로 가득했고, 진료실 문 앞에는 간호사 한 명이 서서 안내하고 있었다. 순서에 맞게 환자들을 진료실에 입장시키면서, 동시에 진료를 마친 환자들에게는 다음 일정이나 검사를 위한 절차를 알려줬다. 한 번에 설명을 알아듣는 환자는 드물어서 간호사는 여러 번 같은 말을 해야 했다. 또 환자마다 의사에게 다시 물어 달라는 것이 많아서 간호사는 진료실 안팎을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환자는 아파서 힘들고, 간호사는 아픈 환자를 상대하느라 지쳐 보였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더 어지러웠다.
진료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입구 정면에 신경외과 교수와 수련의로 보이는 제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코로나19 예방 목적으로 조금 떨어진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왼편으로 몇몇이 앉아 진료 차트를 작성하고 필요한 것들을 기록하는 듯했다. 교수는 어디가 불편해서 왔는지 물었다.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애매한 문장이었는데, 어지럼증보다 거슬리진 않는다고 스스로 달랬다.
“한 달 전부터 어지러워서요. 이비인후과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안진이 계속 있으니 신경외과에도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꽂혀 있던 볼펜을 꺼내 내 눈앞에 들어 올렸다. 가까이에 선 교수는 키가 컸고, 머리도 컸다.
“볼펜 움직일 때 따라서 쳐다보세요. 음… 안진 없는데? 안진 있는 것 같아?”
교수는 몇 번 대강 눈을 보더니 옆에 있던 수련의에게 물었다. 수련의는 짧게 더 관찰하더니, 교수의 진단대로 안진이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수련의는 교수보다 더 키가 컸음에도, 최대한 교수보다 작게 보이려고 애쓰는 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나도 답이 정해진 팀장의 질문에 정해진 대답을 하지.’라고 생각했다. 교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종종 전정신경염에 걸린다고 했다. 전정신경염은 푹 쉬면 자연스레 회복되는 감기 같은 질병이라고 했다. 어지럼증을 진정시킬 약을 일주일 정도 처방해줄 테니 먹어보고, 괜찮아지면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겨우 5분 정도의 짧은 진료를 위해 긴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교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뇌 MRI 한 번 찍어볼래요?”
“교수님이 보실 때 검사가 필요하면 해야지요”
쓸데없는 검사는 없다고 며칠 전에 배웠기에 굳이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할 마음은 없었다.
“젊은 나이라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의사의 말에, 나는 2년 전에 회사에서 한 정기검진에서 뇌 MRA를 찍어본 적이 있고, 그땐 정상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교수는 그럼 큰 문제 아닐 것이라며 어서 나가라고 휙휙 손짓했다. 더 이상 말하기 귀찮아하는 표정에, 나도 더 이상 말 섞기가 싫어져 어서 진료실을 나왔다. 신경외과적 문제가 없다는 진단도, 그래서 다시 여기서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다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