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사람 Feb 08. 2023

우선, 쉬어야겠습니다

제주로 떠나다

9월 2일 목요일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어도 어지럼증은 낫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전정신경염의 치료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어지럼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는 것이 오히려 귀의 전정신경 회복을 더디게 하므로, 푹 쉬면서 자연히 치유되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 퇴근하는 길에 떨어진 기력을 회복시킨다는 핑계로 삼계탕을 사 먹었다. 어지러운 중에서도 '어차피 닭을 한 마리 먹는 것이면 후라이드 치킨이 더 나은 선택이었으려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자취하는 직장인에게 잘 튀긴 치킨 한 마리는 그 어떤 보약보다 기력회복에 도움이 되는 법이니깐.


 엄마는 휴가를 내고 길게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삼계탕이든 치킨이든 잘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충분한 휴식이 가장 필요할지 모른다고 했다. 


 "제주도 갈래? 엄마랑 친한 언니의 친한 친구가 귤 밭이 있는데, 거기다가 농막을 지어놨더라고. 지난번에 사람들이랑 놀러 가서 하루 자고 왔는데 별장 같이 좋더라. 아들내미 딸내미 데리고 다시 간다고 허락도 미리 받아놨는데. 엄마는 아빠도 솜이도 놔두고, 부산에서 혼자 출발할게. 제주도에서 만나서 우리끼리 푹 쉬고 오자."


 사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길게 휴가를 내고 쉬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길게 여행 다니면서 일상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전염병 유행으로 여행을 못하니 휴가를 길게 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회사 정기직무이동으로 팀을 옮겨서 스트레스가 쌓였을 수도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섞이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 노조에서는 파업을 한다 안 한다 시끄럽기도 했다.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며 임금을 동결하던 회사가, 그간의 적자를 만회하고 남을 큰 흑자를 기록하고서도 직원들의 급여를 올려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노조 대의원을 지내면서, 회사에 분하고 노할 일이 많았다.


 어지럼증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길을 걷는데 발걸음을 똑바로 옮기기 어려워졌다. 어지러운 중에 한 번씩 더 심한 어지러움이 몰려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낫지 않는 어지럼증을 참으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회사 일은 없었다. 새로운 팀에서의 업무도, 회사를 향한 분노도 내려놓고 우선 쉬기로 결정했다. 주말을 포함해 열흘 가까이 길게 휴가를 내고 제주로 향했다. 열흘 간의 제주살이가 끝날 때면 어지럼증도 끝나리라.


 "엄마, 제주도 갈게요."


 목요일에 퇴근 후,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으로 향했다. 이미 어두워진 제주도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커튼 같은 빗방울이 한 겹 더 덮여서 눈앞이 뿌얬다. 여행지 특유의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만 귓가에 웅웅거렸다. 공항에서 귤 밭이 있는 위미읍까지는 181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어서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어지러운 눈을 감았다. 곧, 엄마를 만나면 이 어지럼증도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모든 문제에 엄마 만의 해결책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니깐.

작가의 이전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