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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19. 2023

포르투갈은 내꺼야 : 레온의 테레자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 역사 : 두 번째 이야기

 일반적으로 포르투갈의 첫 번째 국왕은 아폰수 1세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폰수 1세 이전에 포르투갈의 군주로 포르투갈의 독립을 주장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폰수 1세의 어머니인 레온의 테레자였습니다.

      

레온의 테레자, 포르투갈의 여백작


레온의 테레자는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인 알폰소 6세의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테레사의 어머니는 알폰소 6세의 정식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테레사의 어머니  “고귀한 가문”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히메나 무뇨스라는 여성이었습니다. 히메나 무뇨스는 알폰소 6세가 부르고뉴의 콩스탕스와 재혼하기 전에 잠시 정부로 함께 지냈던 여성으로 히메나 무뇨스와의 사이에서는 엘비라와 테레사 두 딸이 태어났습니다.      


알폰소 6세는 여러 여성들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얻었지만, 후계자가 될 아들은 일찍 사망했으며 딸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알폰소 6세는 당대 많은 왕가의 아버지들처럼 딸들을 정략 결혼 대상으로 여겼으며 이익을 위해서 딸들을 시집보내게 됩니다. 테레자의 친언니인 엘비라는 당대 남프랑스 지방의 강력한 영주였던 툴루즈 백작과 결혼하게 됩니다.     


레온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 테레자의 아버지


알폰소 6세는 테레자를 부르고뉴 공작 가문 출신으로 처조카이기도 했던 부르고뉴의 앙리와 결혼시킵니다. 앙리와 테레자를 결혼시킨 이유 중 하나는 알폰소 6세는 앙리에게 포르투갈 백작령을 줘서 포르투갈 백작으로 만들었으며 아마도 자신의 봉신으로 앙리의 충성심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딸인 테레자를 그와 결혼시켰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테레자와 다른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대한 권리가 테레자에게 있다고 여긴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테레자는 적자가 아니었기에 레온과 카스티야 왕위에 대한 상속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알폰소 6세가 테레사에게 영지를 따로 떼어줄 수는 있었습니다. 이런 예는 자주 있었는데 이를테면 테레자의 증조할아버지였던 나바라의 국왕 산초 3세(안초3세)는 자신의 사생아 아들 라미로에게 나바라에서 아라곤 백작령을 따로 떼어서 주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테레자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포르투갈 백작령을 따로 떼어서 상속시켜 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여성들이 직접 통치를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남성 보호자가 통치에 관여했었습니다. 그렇기에 테레자가 포르투갈 백작령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사람은 테레사의 남성보호자인 남편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당대 사람들도 테레사가 포르투갈에 대한 통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부르고뉴의 앙리와 레온의 테레자


포르투갈 백작으로 엔히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앙리는 장인인 알폰소 6세에게는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만, 알폰소 6세가 죽고 난 뒤에 포르투갈 백작령을 레온 왕국으로부터 독립하려 했습니다. 특히 아내의 자매인 우라카가 남편인 나바라의 국왕과 사이가 나쁜 틈을 이용해서 포르투갈의 독립적 통치자가 되려 했습니다만 1112년 사망합니다.      


앙리가 죽었을 때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폰수 엔히크는 미성년이었습니다. 당대나 그 후대에 계승권리를 가진 여성들은 이렇게 남편이 죽고 나면 아들과 함께 통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테레자 역시 마찬가지로 아들과 함께 공동 통치자가 됩니다만 아들은 미성년이었으며 결국 통치권은 테레자가 가지게 됩니다.      


테레자는 자신이 자매인 우라카의 봉신이 아니라 독립적인 포르투갈의 통치자임을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위해서는 군사적인 활동을 해야 했는데 테레자는 여성이었기에 군대를 이끌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갈리시아의 강력한 가문이었던 트라바 가문과 동맹을 맺게 됩니다. 트라바 가문은 여성인 테레자가 자신의 가문과 동맹을 맺으려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가문의 사람중 한명이 테레자와 결혼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테레자는 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재혼을 한다면 테레자는 남편이 자신의 권리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차지할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트라바 가문과 동맹이 필요했고 결국 자신의 딸인 우라카를 트라바 백작의 아들인 베루무도 페레스 데 트라바와 결혼시켰습니다. 


  

사위인 베르무도 페레스 데 트라바와 딸인 포르투갈의 우라카와 함께 있는 레온의 테레자


하지만 테레자는 점차 트라바 가문에 더 의존하게 됩니다. 특히 테레자는 사위의 남동생이었던 페르낭(페르난도) 페레스 데 트라바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연인이 되었으며 비밀결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테레자가 페르낭과 비밀결혼을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적 문제로 이미 트라바 가문에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있었느넫 여기에 테레자의 남편으로 포르투갈 백작지위 마저 트라바 가문으로 넘어간다면 포르투갈의 다른 귀족들이 반발할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테레자는 당연히 자신의 연인인 페르낭에게 높은 지위를 부여했는데, 사돈이나 사위보다 더 높은 지위를 부여했으며 페르낭 페레스 데 트라바는 실질적 통치자나 다름 없게 됩니다. 


테레자는 우라카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결국 레온 국왕의 봉신임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여백작으로 여전히 포르투갈의 통치권리를 인정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연인인 페르낭과 함께 포르투갈을 통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당연히 불만을 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테레자의 아들이자 역시 포르투갈 백작령의 상속권리를 가지고 있던 아들 아폰수 엔히크를 중심으로 뭉치게 됩니다. 결국 모자는 1128년 6월 상 마메데 전투에서 만났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사람은 아들인 아폰수 엔히크였습니다.      

테레자는 아들에게 패배한 뒤에 포르투갈에서 추방당해서 갈리시아로 갑니다. 하지만 아들과 싸운 지 2년 후에 테레자는 사망합니다. 테레자가 죽은 뒤 아들인 아폰수 엔히크는 어머니의 시신을 아버지 곁에 묻었습니다.      


상마메데 전투때 아폰수 엔히크


테레자는 비록 마지막에 아들에게 권력을 뺏기게 되지만, 평생 포르투갈의 여백작으로 포르투갈의 통치에 관여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포르투갈이 레온 왕국으로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테레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테레자의 아들인 아폰수 엔히크는 어머니의 주장을 이어받았으며 결국 포르투갈을 독립 왕국으로 만들었고 포르투갈의 첫 번째 국왕 아폰수 1세가 되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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