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샘, 고수의 길
한 방울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 갔다가 비가 되어 내리면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흐르다가
마침내 바다에 이르러 전체로 녹아 든다
그리고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또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하나의 물방울이 바다에 녹아드는 순간
자신의 존재와 물의 본질을 자각한 다음
스스로 다시 비가 되는 선택을 하여
온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적시는 것이다
무언가를 취取(가지다 취)한다는 뜻은
노력해서 얻든 남에게서 빼앗든 간에
누군가를 대신해 세상에 있는 것을
그저 잠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눈다는 것은 내 것을 나눠줘서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것이니
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진정한 나눔이란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하지 않으며
내가 풍족해서 남을 도우는 게 아니다
주위를 잘 둘러보면
진세塵世(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묻혀 살아가는 소박한 이웃들 중에서
이런 아름답고 고귀하며 숭고하면서도
담백淡白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스스로도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이들은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이것과 저것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
세상과 내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넘어
불이不二(둘이 아님)를 실천하는 것이니
조화지경造化之境(만들 조)이라 한다
이러한 나눔의 경지에 이르면
주변에 다가가기만 해도
주위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되어
그 따스함과 사랑에 저절로 감화感化되고
꽃의 향기가 퍼져 나가듯
자연스레 주위 사람을 교화敎化시켜
세상을 밝고 이롭게 한다
부분(개인으로서의 진아眞我)이
몰아沒我(잊을 몰, 자기 아)의 경지를 거쳐
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나면
향후 전체(우주宇宙로서의 대아大我)로
되돌아가는 시점이 왔을 때
중요한 선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선택이란
전체로서의 삶을 이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부분으로 다시 녹아 들어가서
전체와의 합일合一을 다시금 느끼는
지복至福(더 없는 행복)의 경험을
되풀이할 것인가를 뜻한다
물방울이 수증기가 되어 올라가
비가 되어 내려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흐르다가
마지막에 바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스스로의 본래 모습이
하나의 물방울이 아니라
전체적인 물이었음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때 다시금 비가 되어 내리겠다는
주체적 선택은 숭고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현경玄境의 경지가
도道에 이르는 것이라면
조화지경造化之境의 경지란
스스로 도道를 이루는 것이라 한다
기업의 상商행위로 도道를 이루면
시장에서 얻은 것을 시장으로 다시 돌려주니
많은 돈을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는 이치이고
훌륭한 사람이 성공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용이 다시 연못으로 돌아간다 하여
용반기연龍返其淵이라 부르며
선가禪家에서는 입전수수入廛垂手라 하여
득도한 고승高僧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
속세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또한, 불가佛家에서도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빛을 누그러뜨리고 속세에서 중생을 구하는
세상의 등불이 되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고
유가儒家(유교)에서는 현동玄同이라 하여
지혜를 감추고 속세의 온갖 티끌과
하나가 되라고 하였다
그러나, 산은 올라봐야 알고
또한 내려가서 봐야 산이 보이는 것이라
그저 지금까지 단계를 나누어 설명했을 뿐
깨달음에는 본래 늦고 빠름이 없으며
저녁노을이 아침햇살보다 아름답다 할 수 없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하여
진실된 고요함과 텅 비어있음(공空)속에는
실천적 유有(있을 유)가 저절로 생기는
창조와 조화造化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이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도道에 이르는
입문지도入門之道에 들어섬을 뜻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도道에
들어가는 문은 어디고
나가는 문은 어디일까?
도를 말하는 순간 이미 도가 아니니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想道)
이제야 비로소
처음과 끝이 같은 길에 들어섰다
-상처입은치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