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편지, 고수의 길
어느 날 스승의 방문을 열어보니
스승은 간 데 없고
편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하는 제자 연우야!
세상을 알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한
마음공부工夫에 대해 전해주고 떠나려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구나
헤어짐과 이별의 아쉬움을 담아
네가 살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스스로를 지키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몇 자 당부의 글을 남긴다
그동안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노력했지만
고수가 안되더라도 실망하지는 말거라
고수高手가 아니면 또 어떠냐?
이 또한 그저 삶의 한 가지 방편方便일 뿐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면 된다
사랑하는 제자 연우야!
산山이 높으면 골谷이 깊어지는 게
삶의 당연한 이치理致이니
인생을 살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고
나이가 들어 노련미가 더해진다고 해서
이러한 골짜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고수高手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이러한 골谷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흙이 쌓여서 산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골이 깊게 파이면서 산이 높아지기 때문이며
이해관계로 얼룩진 세상사에 휘말리다 보면
자신의 본 마음을 지키지도 못하고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존재와 소유에 집착해서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고수가 되면
저마다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고유한
호신護身(지킬 호, 몸 신)법을 가지고 있는데
중요한 건 몸을 지키는 게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호심護心(지킬 호, 마음 심)이다
마음을 지키는 공부는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삼가하는
신독(愼獨 삼가할 신, 홀로 독)에서 시작하여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어려움과 위기에 굴복하지 않아
스스로 마음의 고삐를 이끄는 주인이 되는
자재(自在 스스로 존재함)함에 이르게 된다
세상과 사물 그리고 나 자신을
그저 있는 그대로 관觀(보는 것)함으로써
거짓된 나我와 마음의 허상虛像이라는
집착과 미망의 골짜기를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진리의 길에 들어섰다 할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는 호심護心 공부는
인위적 유위有가 없는 무위無爲의 공부
공부중의 공부, 공부 아닌 공부라 불린다
소위 말하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이란
이러한 공부의 도구道具나 방편일 뿐이므로
어느 것이 좋고 나쁘며
어느 길이 바르고 그르다는
정해진 틀이나 길이 없다
방편方便(방법 방, 편리할 편)이란 말 그대로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는 다리일 뿐이며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면
이제는 뗏목을 버려야 되는 것이다
강을 건너기도 전에
내가 타고 가는 뗏목이 맞고
다른 이가 타고 가는 나룻배는 잘못되었다며
비난만 하는 것은 당치않은 말이다
모든 이치는 강을 다 건너고 나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명확한 것이므로
굳이 지금 시시비비를 다툴 필요가 없다
날이 추우면 닭은 나무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물밑으로 들어가는 것에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것
사랑하는 제자 연우야!
거스르고자 하는 마음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서로 싸우면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병病이 되는 것이다
세상과 너 사이에 생기는
간극間隙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세상은 그저 흘러갈 뿐이고
너는 그저 존재할 뿐인 것이다
옛말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하여
큰 길에는 원래 정해진 문門이 없으니
네 스스로의 길을 가면 된다고 하였다
대장부大丈夫는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그렇게 가는 것
자신의 길은 자신만이 찾을 수 있으니
도대체 자기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겠느냐?
고수가 되어도 괴로운 건 괴로운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 연우야!
여기에 고수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는 호심공護心功의 공부를 전하니
네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이 공부가 네 마음을 보듬어 주길 바란다
어리석음에 머무는 우매한 사부가 쓴다
사부 우두헌 師父 愚逗軒
-상처입은치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