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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Dec 26. 2020

두려움의 지뢰밭을 건너는 글쓰기






내 마음은 비무장지대 같아서 곳곳에 지뢰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아 피할 수 없음에 어떨 땐 생의 기쁨이란 지뢰를 밟아버려 화사한 축포를 터뜨리기도 하고, 어떨 땐 좌절과 회한의 지뢰를 밟아 사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저 건너편까지 걸어가야 할 운명을 부여받은 나는 산재한 지뢰의 존재를 알지만 그럼에도 걸어간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운이 좋아 혹은 요령이 좋아 불쾌한 지뢰들을 피하기도 하고, 어떨 땐 연달아서 그것들을 밟고선 만신창이가 된다. 하루에 세 번 양치를 하고 두 번 세수를 하는 걸 스스로가 세어 알듯이 하루에 몇 번 꽃지뢰를 밟고 몇 번 불지뢰를 밟는지 스스로 세어본다면... 그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린 매일 두려움의 지뢰밭을 걷고 있다는 것을. 그 지뢰를 솜씨 좋게 제거하기도 하고 제거하려다가 더 크게 다치기도 하며, 그도 아니면 무방비 상태로 손 쓸 수 없는 순간에 당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삶과 글쓰기는 꼭 닮았다. 마치 소우주처럼, 인생의 축소판 여정처럼.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의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 드는 건 그러므로 당연한 일인 걸까. 발길에 치이는 장애물 따위 없이 안전하고 편안한 걸음으로 목적지에 도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첫 문장에서부터 끝 문장까지 내 두 발로 걸어가는 일은 무자비하게 뿌려진 두려움의 지뢰밭에 몸을 맡기는 일이었다, 언제나. 하루에도 수 십 번 크고 작은 두려움이 내 인생에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글을 쓰는 동안에도 온갖 종류의 두려움이 내 옷깃을 붙잡고 허리를 감싸 안는다.


용서라는 주제로 글을 쓸 때면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과, 내가 용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야 만다. 그 얼굴들이 두려움의 얼굴이다. 나는 여지없이 외면하고 싶어 진다. 행복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면 그 순간의 행복을 모른 채 시간을 죽였던 과거가 떠오를 것이 불 보듯 뻔하고 그 과거와 마주치게 되는 건 두려운 일이다. 가만히 있지 않고 이렇게 또 글을 쓰는 바람에 공연히 그것들을 마주쳐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지뢰들에 몸이 찢겨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걸어간다. 마지막 문장까지 걸어간다. 아마도 그 지뢰들을 터뜨려 얻은 상처는 혐오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라 위안과 희망의 씨앗이란 걸 느끼기 때문일 테다. 지뢰 하나를 밟아 폭발시키면, 그 폭발된 지뢰 하나는 제거된다. 내면에 묻혀 있던 두려움이란 지뢰가 100개라면 글을 씀으로써 나는 그것을 91개로, 76개로, 43개로... 점점 줄여나간다.

글을 쓰고 나면 마음에 응어리처럼 뭉쳐 있던 무언가가 사르르 풀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가벼워진다. 글은 이런 방식으로 내게 치유를 주었다. 꽃지뢰를 준비하기보단 불지뢰를 한 수레 대령해 그것을 밟게 함으로써, 우리 심장에 꽃을 닮은 상처를 내고 끝내는 그 상처를 없앤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일은 결코 잘 닦인 오솔길을 걷는 일이 아니라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미지의 땅을 걷는 불안한 일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또 쓰는 건 진정한 치유를 향한 무의식적 의지의 소산이 아닐까.


내 삶에 흩뿌려진 온갖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만나는, 아주 불편하고 언짢은 일들을 자처함으로써 나는 평화로운 땅을 일군다. 아이러니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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