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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제철이 있다면 지금,<작별하지 않는다>

by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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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제철이 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겨울에 읽어야 하는 책이다.

지금처럼 눈이 한없이 쏟아지고 추운 겨울에.

처음 읽었던 겨울에도 눈이 왔었을지,

아니면 읽는 내내 한기가 느껴져서 눈이 왔다고 느꼈던 것일지.

이 책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읽어야 한다.

난방을 가능한 하지 않고 공복 속에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느닷없는 눈이 인도하는 길을 함께 해치고 들어가게 된다.


생시 같은 꿈.

혼과 닿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주의 목공방에

겨우 도착해서 새장을 열고,

조용한 숨을 내쉬며 함께 머물 수 있다.


노벨상수상 소식에 반가워서 한 번 더 펼쳐보려다 흰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신 <흰>을 찾아 읽고 <작별하지 않는다>의 작업노트처럼

작가가 마음속으로 공그렸을 하얀색 이미지를 함께 엿 보였다.

텅 빈 black , 흰빛 blanc, 검은 black, 불꽃 flame이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눈은 침묵과 소리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

어둠과 빛의 사이. 기억과 현실의 사이.

꿈과 생명의 사이를 무심한 듯 차갑게 가득 채우면서

증언의 증언을 건너 건너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4.3을 듣게 된다.

그렇게 소설가 경하의 친구 인선을 거쳐 인선의 엄마 정심에게 닿는다.


끝내 뼛조각 하나 찾지 못하여 실패하지만,

매일 악몽을 꾸지 않으며 이불 아래에 톱을 깔고 모로 돌아누운 밤들.

큰 폭력이 무참히 휩쓸고 지나간 이후의 삶에 대해서.

통증은 아프지 않은 사람의 세계로 고립을 만든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통이 그어놓은 예리한 선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오래도록 고립되어 있던 세계의 이야기로.


한 밤의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계엄의 가능성이

어떠한 폭력을 의미했었는지 다시 상기할 수 있는.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 거야?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폭력이 재현된 수많은 자료를 혼자 보고 막막해진 작가의 마음이

꿈의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

하얗고 서늘한 눈, 흰 새,

회벽, 새의 그림자.
까만 나무, 먹, 어두운 심해.

그리고 촛불.

무채색이 남긴 잔상으로 포개지며 이어지는

생시 같은 꿈.


하얗게 눈이 내린 뒷산에 고요히 머물다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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