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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Oct 29. 2015

상처에 이끌리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

대화도 잘 통하는 것 같고, 나랑 성향도 비슷한 것 같은.

무턱대고 들이대지도 않고 적절히 거리도 둘 줄 알며 나를 이해하는 것만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흔히들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조금씩 열리던 마음들이 서서히 더 열리고 이내 그 사람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라도 되어버린 듯 내 눈은 그 사람만을 쫓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설렘이라고 말하며 사랑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정말 그 감정이 사랑이고 설렘일까. 내가 무언가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이대로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해도 되는 걸까.

알 수 없는 불안의 잡념들이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운명인가, 우연인가.




대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아픔이던지 아픔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을 갖고 있다. 그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라나게 되는데 심한 경우는 자신은 평생 사랑받지 못하고 홀로 외로워하며 살 것이라는 굴레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게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 세상은 믿을 사람 하나 없는 팍팍한 공간일 뿐이고, 오늘 하루도 그냥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사는 것도 그다지 재미가 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오늘도 살아가야 하는지 뜻 모를 이유에 집착하게 된다. 


'이 재미없고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을 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부단히 애를 쓰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심각한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버린다. 


그러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어떤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겪었던 아픔을, 내가 자라온 환경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까지.'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이내 욕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 사람에게는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더라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지 않고 되려 안정감을 느낄 것만 같다.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오는 것일까. 이러기 위해 그동안의 아픔들이 존재했던 것일까. 


많은 생각들이 나 자신을 흔들지만 그럼에도 굳건히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한 걸음씩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시작한다. 관계가 점점 두터워지는 듯하고 그 사람도 나에 대해 신뢰가 늘어가는 것만 같아 마음에서 행복이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 행복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까지 생기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 사람과 교제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더 이상 우중충한 비 내리는 하늘이 아닌 햇볕이 쨍쨍한 맑은 상태인 것 같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누구나 그렇듯 설렘이란 감정이 먼저 생기기 시작한다. 

설렘은 호감으로, 호감은 조금씩 여러 형태를 거쳐 사랑이란 모습으로 귀결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나도 사랑이란 모습으로 변해가야 할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그 사람과 있으면 행복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안하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고 그 모습들이 그 사람에게서도 보이는 것 같다. 권태기라고 부르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을 정도로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것 자체가 꺼려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더 이상 편하지 않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운명이 아닌 우연이었던 것일까.'

 


상처는 서로를 끌리게 만드는 자석이다




어떠한 공감대가 있으면 누군가와 가볍지만 소통할 수 있고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편이다. 낯선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겠지만 그 사람과의 어떠한 '공감대'만 있다면 낯선 자리도 어느 정도는 편하게 만들 수 있다. 


남자들은 흔히 스포츠, 게임 등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기 시작하고 여자들은 육아, 패션 등의 소재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람은 각자 성향이 다르기에 누구나 다 똑같다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런 편이다. 대화의 소재를 찾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지만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 마치 방언이라도 터진 것처럼 금세 낯선 사람에서 친구라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결론부터 말하면 상당히 위험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공감대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마음의 상처'라는 공감대가 존재하기에 서로 잘 맞는다고,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처음은 두 사람 모두 조심스럽다. 상처가 있었던 만큼 더 이상은 아프기 싫은 어쩌면 본능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번 대화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게 되고, 술을 한 잔 마시다 보니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아픔을 가졌기에 우리는 서로 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착각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라.'


이들은 자신들이 '비슷한 성향'이라 생각하고 만나지만 '비슷한 상처'이기에 끌리는 것이다. 

전이(transference)라는 개념에 대해 몇 차례 언급했었는데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이되어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어버리는,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더 크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로 끝날 위험성이 높다.


마음의 상처는 서로를 끌리게 하는 자석과도 같은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러한 관계에서 이별을 경험할 때, 어떠한 이별보다 후유증이 크게 남는다. 가장 믿었던 만큼, 나를 온전히 기댈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그 아픔의 정도는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다시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나도 언젠가 이런 경험이 있었다.

'상처'라는 코드로 만나 '사랑'이라 믿었던, 그렇기에 더 후유증이 길었던 만남.


주변에서 나를 말릴 정도였었고, 가족과의 연도 끊어버릴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내 감정을 강렬했었다. 그 강렬했던 감정은 그 사람도 같지 않았을까. 


상처가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로 인한 아픔도 죄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아픔들이 있지만 그 아픔들의 정도가 다소 강했던 만큼 조금 더 괴로운 것뿐이다. 손에 생채기 하나만 생겨도 아프다 하는데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깊이 또한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관계가 깊어져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과정들의 반복을 통해 그것 또한 경험이고 과정이라 말을 한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전한 관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예쁘게 만났어도 헤어질 때 아픈 것은 똑같다. 더 사랑했을수록 더 아프다. 그것이 쌓이면 경험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물건 골라 집듯 고르며 만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처와 상처가 이끌린 만남은 끝이 좋지 않은 것을 나는 내 경험을 통해서, 주변의 관계들을 보며 배우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러한 만남들을 분별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가며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겠지만 한 가지만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내가 저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다.'


사랑이라 하는 관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이유들로 연인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만을 돌아봐도 한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 상태에서 누군가의 아픔까지 돌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순간의 판단 미스로 그 상대에게도 또 하나의 상처를 줄 수 있고 나 자신도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다음에 고려해야 할 것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같이 채워가고 싶다.'


'같이'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같이 채워줄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 비단 연인 관계에서만이 아닌 대인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관계의 실패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별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듯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자신의 모습 속에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살면서 사람들과 많은 관계들을 맺고 살아가지만 인생의 문제들처럼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 오히려 계획대로 안 될 때가 더 많더라.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더 그렇지 않을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만큼 아파하면 된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하고. 하지만 한 가지는 생각해 봐야 해. 

그 사람을 사랑한 건지. 아니면 거울 속에 비친 네 모습과 같았던 그 사람(나)을 사랑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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