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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Jul 09. 2016

나는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움이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당신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련과도 같은 시기가 있다. 이제 막 20살이 넘어 성인과 학생 사이에 머무는 과도기. 그 시기에 그들에게는 하나의 우편물이 배송된다. 바로, 신체검사 통지서. 학교와 학원, 대학입시에 시달리며 살아가던 지난 12년의 시간들을 끝마치고 이제야 해방되나 싶었는데 다시금 군대라는 울타리로 데려가려는 국방의 의무는 이따금 무겁게만 느껴지는 듯 싶다.


얼마 전, 지상파 방송에서 특전사와 의사 사이의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시청률이 무려 30%가 넘을 정도로 인기가 절절했던 것 같다. 드라마 속 모습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현역 군인으로 입대하여 제대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들 말하곤 했었다.


입대라는 단어는 비단 남자에게만 영향력이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입대 장정의 가족, 친구, 연인, 지인들까지도 그 한 단어로 인해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가곤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기에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21개월이라는 그 길게 느껴지는 시간들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그 책의 저자는 이렇게 묘사했던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정말로 확인하고 싶다면 떨어져 지내봐야 한다. 떨어져 있는 그 시간들이 지옥과도 같은 어둠의 늪처럼 느껴지는 슬픔의 시간이라면 난 그를 사랑하는 것이고 생각만큼 괴롭지 않다면 그 감정은 사랑보단 우정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랑은 질의 요소가 아닌 양의 요소라고.

 

이건 사랑이었구나.



항상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남동생이 지난달 입대를 했다. 머리를 빡빡 밀고 긴장감과 불안으로 입대 전까지 힘든 나날들을 보내던 내 동생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와 집 걱정을 했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부재중인 그 시간들 동안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오히려 입대라는 이유보다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입소식날 근무를 해야 했던 나는 같이 가지 못했었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짤막한 통화로 안부를 전하고 나서는 바로 일을 하러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는데 텅 비어있는 동생의 방 안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툭 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 눈시울은 붉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들을 군대에 보낸 것 같은, 오래 교제한 연인을 먼 타국에 보낸 것 같은 이해라는 범주를 넘어선 감정들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함을 느꼈다. 


'조금만 더 친근하게, 다정하게 잘해줄걸.'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그렇게 1주일 뒤, 군복을 입은, 아직은 어색한 모습의 동생의 사진을 확인하고서야, 편지와 소포를 받고 나서야, 사랑의 열병을 앓는 듯했던 괴로운 마음들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 이런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의 지인들은 황당하다는 듯 이런 말들을 하곤 했었다.


"야. 딸내미 시집보내니. 무슨 동생이 군대 가는데 형이 이렇게까지 하냐. 적당히 좀 해."


그랬다. 나는 조금 유별난 형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으니까. 

나는 하나밖에 없는 내 남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 이건 사랑이었다.'


남녀 간의 사랑과는 또 다른, 가족 간의 유대감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또 다른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 사랑이란 말로도 불충분하진 않을까.


나는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움이다.



내가 워낙 유별날 정도로 행동했던 탓일까. 오히려 어머니는 나에 비해 담담한 편이셨던 것 같다. 동생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잠시 눈시울을 붉히시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씩씩하게 사시는 것 같은 모습에 오히려 내가 보였던 모습들이 민망했던 것 같다. 


특별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시지 않던 어머니는 그냥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셨던 것 같다. 동생이 입대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동생의 사진이 신교대 카페에 게시되었다. 그때부터 동생에게 짧게나마 편지를 보낼 수도 있었고, 이런저런 부대의 소식들도 전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군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낯선 모습을, 어머니는 한참을 바라만 보고 계셨다. 그러더니 내게 물으셨다.


"이거 사진 캡처 어떻게 하는 거야?"

"휴대폰 줘. 내가 해줄게."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카페에 올라온 사진을 간직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캡처를 해 드리니 핸드폰을 한참을 만지작 거리시며 무언가를 하시는 듯했다. 그 날 저녁, 우연히 SNS 메신저를 확인하다가 보니 어머니의 프로필에 커버 사진으로 조금 전 캡처하였던 동생의 사진이 등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쓰여 있었던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겨있었던 한 문장.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사랑하고 고맙다.'


살아가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내가 괜히 초라하게 느껴지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

자존감이 떨어지고, 한없이 남들이 부럽기만 할 때.

그런데, 설령 내가 그렇게 나 자신을 느낀다 할 지라도,

이 세상의 한 사람. 그 사람에게 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잊지 말자.


'나는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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