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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Nov 27. 2015

행복은 제자리걸음

행복을 위한 리스크를 감당할 용기

어떠한 요리들을 만들 때 흔히 말하는 레시피라는 것이 있다. 그 요리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침서라고나 할까. 인터넷의 발달로 검색 한 번이면 처음 만들어 보는 요리도 엇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미역국을 처음 끓이는 사람이 '미역국 끓이는 법'이라고 검색만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레시피들이 블로그 등에 기재되어 있어 쉽게 끓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도 각자 다르고 다양하다.


행복이란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대체로 '안정감'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야, 다른 누군가는 개인적인 여가시간이 넉넉해야, 누군가는 정서적인 평안함이. 모습과 형태는 다르지만 안정적이라는 것. 그것이 행복의 포인트이다.



"나는 늘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아요."




살아가며 내가 가장 마음속에 품고 다녔던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평범하게 고등학교 졸업해서 남들처럼 대학 가고 군대 다녀와 대학 졸업 한 뒤에 취업해서 직장 생활하다가 결혼하고 자녀 낳아 양육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요즘 시대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항상 엉뚱한 길을 선택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유학생활을 시작으로 귀국 후에도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에서야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하나 둘 씩 취업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도 한 숨 섞인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나는 왜 이 모양이니......"


그냥 평범하게 선택했으면 중간은 갔을 것 같은데 한 번의 선택이 꼬이기 시작하니 계속 꼬이는 것만 같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 자신이 굉장히 불안정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은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고 고졸에 복무 마치면 30대를 앞두고 있는 나이이고. 내 또래에게 늘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은 느껴본 사람은 아마 알겠지만 조급함을 느끼게 만들고 그것이 나아가 불안이 되고 우울과 권태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모든 경험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비록 모를지라도 이 경험들이 어떻게든 쓰인다는 사실을.

남들과 다르다 해서 그것이 불행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나만의 행복이란 레시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평준화되어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것보다는 같은 것을 추구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욕심 없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들이 말하는 '평범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 일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남들과 같음을 추구하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재킷을 굳이 입겠다고 한 쪽 팔을 끼우고 반대편 팔까지 끼우려다 보면 재킷이 찢어져버리듯 남들과 같아지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재능, 달란트들을 다 무시한 채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살아가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자신의 재능대로 살아보려 아무리 애써도 잘 안 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시작한다.


'할 만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일자리 알아봐야지. 제자리걸음 그만 할 때도 됐잖아.'


이렇게 합리화를 하며 서서히 세상과 자신의 거리를 가깝게 하려 한다. 자신의 달란트대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과는 타협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스스로와 타협하는 순간 진정한 나 자신과 행복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삶이 불안 자체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상황 때문에 안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자리걸음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 같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요."



행복의 리스크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행복이라 느껴질 수는 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메시지들이 항상 들려온다.


'이건 아닌데...'


한 때는 내 마음을 사로잡던 이러한 메시지들도 내가 멀리하려 하고 그냥 지금에 만족하려 하는 순간 점점 그 소리는 옅어지고 작아지며 결국 들리지 않게 되어버린다.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행복이라, 안정이라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행복은 매슬로우의 이론처럼 내 자아를 실현하는데에서 시작된다. 우리 각자에게는 '자아'라는 것이 있다. 이 자아라는 녀석은 여러 역할을 하는데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나를 나답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녀석'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예전에 지인 중에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있었다. 같이 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고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앞으로의 진로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피아노로는 먹고살기 힘들다 말했다. 예전에는 피아노 연주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해서 이 길을 선택했는데 막상 전공을 하고 나서 보니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이제 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었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의. 식. 주는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어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음악 쪽으로는 나가지 않겠다던 지인은 리스크보다는 안정을 택한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조건 리스크를 떠안고 성난 황소처럼 돌진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철없는 어린아이가 위험한 줄 모르고 차도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그림만 그렸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중학교에 가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중학교에 가니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그림을, 고등학교에 가니 대학에 가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학에 가니 취업을 위한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아이는 더 이상 그림 그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을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타고난 역량과 재능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한계도 명확히 존재한다.


정말 그림 그리는 것이 좋다면 그림만 그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난이란 것이 뒤따라 올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리스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예술분야는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작품을 단기간에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당시에는 부족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을지라도 후대에는 명작이라 칭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에는 가난이란 리스크는 없을 수도 있다. 불안이란 리스크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나도 한 동안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고민 중인 것 같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에, 단지 글 쓰는 것이 좋아 시작했기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치열하고 각박한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 쓰는 것에도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점점 흐려지는 듯했다. 불안은 밤낮없이 찾아왔다.


무명에서 유명이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조차 할 수 없고,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대학에 들어가 무언가 전공을 해서 그 전공에 맞던 혹은 맞지 않던 직장에 들어가 생활한다면 안정적일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것 같았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행복한 삶이 아니다.

꼭 돈이 많아야만 행복한 삶이 아니다.

꼭 인정받아야만 행복한 삶이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결과물이 없을지라도 적어도 내가 글 쓰는 것을 즐겼고 최선을 다했다면 때론 불안과 가난이란 리스크가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 스스로에게 내 삶은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도 행복을 위한 제자리걸음을 걸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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