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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Aug 15. 2016

소중한 것은 이미 내게 있더라

요즘 들어 생각보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남들은 금방 잊으니까 너 자신부터 먼저 신경 써."


티를 안 내려 하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항상 보고 있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느껴지는가 보다. 최근 들어 개인적인 사정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해결되는 일과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음에도 그것들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건 풀리지 않는 하나의 족쇄처럼 느껴졌다.


야속할 만큼 시간은 흘렀고, 내가 예상하던 상황으로는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의 등장으로 내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졌고 시름시름 앓는 날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 변수들 덕분인지 때문인지 내가 우려하던 상황들로 인해 고민하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은 총알에 뚫린 듯 공허해졌고 나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전함에 압도되어 조금씩 생기를 잃어갔다.


이 무렵부터 매일 밤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뿌연 안개가 짙게 내린 밤, 내 눈 앞의 모든 것들이 불투명한 어느 숲에서 나는 뛰고 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하염없이 뛰고 있었다.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그것.

식은땀을 닦으며 꿈에서 깼을 때, 그 건 내 손에 없었다. 하염없이 뜀박질을 한 꿈속의 나처럼, 심장만 요동치듯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일까.

내 마음은 왜 그토록 공허했던 것일까.


소망하던 것과 소중한 것의 차이



같은 꿈을 8번쯤 꾸었을 무렵,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던 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심리학 서적들이나, 드라마, 영화들을 보다 보면 현실에서는 꿈꾸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던 것들을 꿈으로나마 가지려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말도 걸지 못하던 아름답던 그녀와의 데이트, 마치 천국이 있다면 이 곳이리라, 싶을 정도의 종전에 느끼지 못했던, 말로 형언할 수 없었던 감각과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꿈속에서는 가능했다. 비록 꿈의 내용과 상황들을 내가 정할 순 없었지만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내가 깊이 소망할수록 꿈속에서 내가 소망하던 그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곤 했던 것 같다.


꿈에서의 감정과 쾌락들이 강렬할수록, 꿈에서 깬 뒤의 고통 또한 잔인할 만큼 강렬했다. 차라리 경험하지 못했다면 좋았을 것을. 꿈도 하나의 마약이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계속해서 잠을 자려고 하는 내 모습 속에는 그 꿈을 다시금 누리고 싶다는 무의식적 소망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일하는 시간, 씻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등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 억지로라도 잠을 자려 했던 것 같다.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았다. 내 삶은 망가지고 있었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처럼 내 마음은 멈춰지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마음이 산산조각 나 버릴 것만 같았다.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밥을 짓고.

너저분하던 책장 속 책을 한 권씩 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정리해놓고.

커피를 한 잔 내려 테이블에 앉아 집안 구석구석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기에 소중하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내가 귀신과도 같았던 내 마음속 욕망의 덩어리, 허상을 쫓느라 나는 내 곁에 있었던 가족들을, 나를 위로해주던 책들을 올바르게 응시하지 못했다.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었던 그들과 그것들에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느껴졌고 그제야 조금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소중한 것은 이미 내 곁에 있었구나. 허상은 털어버리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때론 내가 소망하는 것이, 바라는 것이, 갖고 싶은 것이 내게 진정 소중한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 거짓된 소망에 집착할수록 정작 내게 이미 주어진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게 되고, 멀리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분명 내가 정말 소망하는 것이 내게 필요한 것일 때도 있긴 하다. 그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감정이 생길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미 주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한 장의 사진, 소중한 사람들과의 식사.'


이미 주어져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허상에 속아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달콤한 꿈을 소망하기보다는 조금은 아프더라도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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