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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Nov 25. 2015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한다는 것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용서

한 차례의 다툼이 있었다. 

작은 언쟁으로 시작된 다툼은 언성이 높아지는 큰 말다툼으로까지 번져버렸다.

가장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는 가족들 간에도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때론 내가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 서로의 영역을 놓고 싸우는 듯한 형국이다. 옆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지켜봐왔음에도 이러한 다툼들이 있어야 할 만큼 서로가 이해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년기 시절 부모의 불화를 자주 보곤 했던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늘 눈치보기에 바빴고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늘 불안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 불안감은 아이가 성장해가며 아이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어 자리 잡았고 시시때때로 나타나 아이를 괴롭히곤 했었다. 어쩌면 그 아이에게 있어 그러한 것들은 하나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제대로 풀리지 않은 그 상처들이 이러한 다툼들을 만드는 원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가며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다. 부모와의 잘못된 애착관계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고 정서적으로 제대로 된 독립을 하지 못하게 된다. 뒤늦은 사춘기라도 겪는 것 마냥 부모와 잦은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스스로 오랜 방황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만큼 유년기 시절의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스로 내면의 꼬여버린 문제들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부모라는 거대한 산맥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니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처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회복의 기간은 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만큼 어렵고도 복잡한 것이기에. 


그렇게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덜 하지 않을까. 독립을 할까. 내가 계속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극단적이라 볼 수 있는 이러한 해결책들은 답이 되질 못했다. 올바르게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관계 개선 및 스스로의 회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으니. 그 아이는 끊임없이 답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것에만 몰두하였다.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구나. 이해는 그다음인 것 같아.'


그 아이는 자신이 성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간이 더 오래 지나가 버리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회복시키기로 선택했다.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과 마주하고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하나씩 해결하나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아이는 스스로 바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바로 서고 보니 모든 것이 억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런 불화들을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런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던 걸까.'


자신이 완전히 회복했다 생각했던 그 아이는 이제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부모와 마주하기로 결심하고 집으로 들어가 부모를 바라보는데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흰머리로 가득하고, 기운도 예전만큼 없어지신 그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히려 울컥하는 마음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의 억울함이 사라져버릴 만큼 그분들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을지도.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고 난 후 부모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다. 그 아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성장하는 데 있어 모두 필요한 과정들이었을 거야. 이제 와서 그분들이 나에게 용서를 구한 들 내 마음이 편해질까. 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내가 그분들을 용서해야겠다.'


퇴근 후 아무 말 없이 안아드린 어머니는 잠시 어리둥절 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느끼기 시작하셨다. 나 또한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진정한 용서는 상대가 나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들과 행동들을 했었을지라도 그것마저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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