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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Aug 10. 2016

다름과 틀림의 간극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던 순간

늘 반복되는 일상에 때론 지루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퇴근 시간 무렵,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기대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많이 변했다.'


출근길 탔던 버스 기사님과 퇴근길 타던 버스 기사님이 달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달랐고, 내 모습도 아침과는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항상 똑같다고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틀에 박혀 진부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던 것들은 그 순간 새로움과 낯섦, 동경의 대상들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어쩌면 다름을 발견한다는 건 내 안에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 자신과 마주하는 건 아닐까.


꽤 오래 전인 것 같다. 당시 즐겨보던 의학드라마가 있었다. 


신경외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주. 조연들의 미묘한 감정의 연결, 현실감이 느껴지던 연출.


극 중 주인공은 자타공인 천재 서전(Sergeon)이었다. 그 또한 스스로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으며,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자존심이 센 캐릭터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사회에서도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런 성향은 타자와 관계 맺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도 그랬다. 늘 혼자 밥을 먹었고, 진료를 보고, 그는 항상 혼자였다.


실수 하나 없이, 티끌 하나 흠잡을 데 없던 그였는데, 어느 날 수술 중에 의료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조금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지도교수는 수술 전 그에게 분명 '마음'으로 가족들을 위로해주라 말했었다. 그에게 있어 '마음'으로 설명한다는 건 육하원칙에 의거 의학적 부분을 포함한 세부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교수가 그에게 전하려던 뜻은 사실 그것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의 입장에 서서 공감을 해주라는 뜻이었다. 그러지 못한 그에게 교수는 일침을 날린다.


"수술이 성공했더라도, 의사로서의 자네의 판단이 옳았을지라도, 정작 환자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면 자넨 틀린 거야. '틀려도' 많이 '틀린 거야'!"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자존심이 센 그에게 '틀림'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틀렸다는 건,

내 생각과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나는 유한 자라는 자각, 

모든 상황과 환경, 사람 조차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는 것.


'틀림'을 잘못 해석할 때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틀린 건 옳지 않은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다. 마치 자동차 공정에서 부품이 불량이라도 난 것처럼 생각과 감정, 행동까지도 틀렸다는 이름 아래에 무참히 짓밟아버리기 쉽다. 그러나, 틀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각도와 관점에서 그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섬세할 수 있고 타인이 놓치는 것 하나까지도 찾아내어 그것에 더할 수 있다는 것.


다름과 틀림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단순한 단어의 차이만은 아니다. 

다름이 내가 아닌 다른 것과 마주하는 것이라면,

틀림은 내가 아닌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니'라는 단어에 점을 하나 찍어 '나'가 될 수도, '너'가 될 수도 있듯 다름과 틀림의 간극은 먼 것 같아도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발견하는 각자의 '점'하나를 발견하여 적용할 수 있다면 그 간극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리고 나와 다른 것을 이상한 것이라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들과 차이들을 조율하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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