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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Dec 19. 2015

생각의 창살

"나를 가두고 있던 것은 어느 누구도,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오랜만에 생각으로 가득 차 생각의 풀장에서 헤엄치는 듯한 하루였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들이 샘솟는 것이 얼마만인지.

별 다를 것 없이라 생각했던 아침의 내 모습과는 다르게 집으로 돌아온 밤의 나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보내던 한 주. 

한 순간에 나를 바뀌게 만든 것은 역시나 생각의 차이였다.


'너 커서 뭐가 될라 그러니. 아, 나 다 컸는데. 아 진짜 나 뭐 먹고살지.'


혼자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버스를 타고 오고 가며 지인과의 전화 속에서, 또 다른 지인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내 생각들을 가둬두었던, 굳게 닫힌 문의 열쇠를 발견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불과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지난 경험들이 꼭 어딘가에서는 쓰임 받으리라.'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기는 있었지만 그 순수한 동기가 어쩌면 나 자신을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보면 특출 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잘하는 것이 있다.

유학생 시절, 1년 준비해서 간 것 치고는 영어를 잘 한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었다. 그 당시에는 주변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문득 그 당시 일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갔다.


"너 왜 같은 말을 해도 그렇게 어렵게 하냐. 그냥 한 단어로 끝내도 되잖아."

"내가 말을 어렵게 하는 거야?"

"너랑 영어로 말하고 있으면 힘들다니까."


얼마 전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같은 것을 봐도 그냥 느끼기보다는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말로, 내 생각으로, 내 감정으로, 내 색깔을 담아.'


그래서일까. 글을 쓸 때도, 심지어 내 개인적인 일기장에 글을 쓸 때도 짧은 글을 잘 못 쓰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은 내가 쓴 글들을 보다 혼자 글 속에 빠져 크큭 웃고 있기도 하고 때론 내가 써놓고 내가 읽다 지칠 정도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언어가 나에게 가져다준 매력은 컸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는 말과 글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적절히 현실을 바라볼 줄도 알아야 했었다. 평생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기에는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 못했다. 내 양손에 두 가지를 모두 쥘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면, 적절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균형 있게 만들어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어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먼 훗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하는 것으로 최대한 현실적인 스케치를 해보니 대충 그림의 뼈대는 나온 것 같았다. 그 후에 여러 변수들이 있겠지만 그 또한 감당해야 하는 내 몫이고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된다. 지금은 스케치에 만족하고 천천히 숨 고르기를 하는 정도여도 나에게는 충분했다.


너무나 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했었기에 현실을 바라볼 수 없었고,

내면에 뿌리내린 고정관념이 내 시야를 좁게 만들었고,

그것이 내 한계라 단정 짓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었다. 

적어도, 앞으로의 나는 오늘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리기까지 무수히 많은 스케치를 하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해서 '만족할 만큼'은 되어야 색칠을 시작하듯, 어쩌면 나도 인생의 스케치의 과정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감사한 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의 발견과 내 스스로의 대한 믿음이 조금은 더 생겼다는 것. 그리고 사고의 유연함의 중요성도 다시 되새기게 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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