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진섭 Jul 03. 2016

누군가의 삶에 개입한다는 건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걱정한다는 이유로 모진 말을 할 때가 있다. 정말 걱정스러운 이유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때론 그 걱정이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정말 힘들 때, 내가 정말 아플 때, 내가 필요했던 건 걱정보다는 그냥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이었는데도.


"나정도 되니까 너한테 이런 말해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


이런 말을 간혹 듣곤 한다. 고맙기도 하지만, 나와 관계없는 남이 그러한 말들을 내게 할 리가 없다는 것도 알지만 이런 말도 계속해서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아님 그냥 지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 거야. 앞뒤 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가 하는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는 옛 말처럼 어떤 말은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연고 같은가 하면, 어떤 말은 치유는커녕 되려 상처 위에 스크래치를 하나 더 그어버리는 말도 있다. 그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가는 말하는 주체의 성품에 달린 것은 아닐까.



"너나 잘하세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말은, 영화 개봉 이후 한 동안 많은 패러디들을 불러있으켰었던 것 같다. 걱정이라는 핑계로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누군가와 마주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속에서 욱하고 터지는 듯한 이 말.


'너나 잘해-'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 인생에서는 자신이 인생이라는 무대 속 주인공이고 삶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변수들에 때론 이렇게, 때론 저렇게 대처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기쁨들로 충만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수많은 변수들에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보다 더 예상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는 희로애락들은 홀로 가는 사람들에게선 좀처럼 느끼기 힘들지 않을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며 살아가는데, 그 관계 속에서 느끼는 기쁨, 슬픔, 아픔, 즐거움 등 여타 감정들은 이 관계들을 통하여 발생한다. 


어느 누구와는 깊은 관계를, 다른 누군가와는 조금 얕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 마음처럼 되진 않지만 누구에게나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까운' 관계 속에서는 다른 '얕은' 관계들에 비해 상처를 주는 말들도 더 하기 쉬운 것만 같다.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런데,라고 시작하는 그의 말은 어떨 때 보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정말로 그의 걱정이 날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이미지를 나에게 투사한 것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에 개입한다는 건 



얼마 전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도 주목받고 있는 것이 있다. 일명 '아들러 심리학'으로 불리는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정신과 의사가 주창한 심리학이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이나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 심리학과는 다르게 개인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상처' 즉, 원인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 '현재' 즉, 목적에 주목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 심리학을 구성하는 중요 개념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타인과 자신 사이의 과제를 분리하라는 것인데, 편하게 말하자면 '남의 일에 함부로 개입하지 말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를 오해하면 철저한 이기주의가 연상되기 쉽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다. 타인의 과제라는 건 그 사람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을 뜻하기에. 이와 동시에 나의 과제란 마찬가지로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란 뜻이다. 


그런 순간이 있다. 

자신의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더 복잡해진 것 같을 때. 나는 해결방안을 물어본 것이 아닌데 '이렇게 해, 저렇게 해.'하며 훈계하듯 말할 때.


누구나 한번쯤은 다른 이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 말하기 전에, 한 번 쉬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때론 무언가를 장황하게 말하는 것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에 대해 자신이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아닌가를.

그로 인해 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를.


누군가의 삶에 개입한다는 건 내가 그의 과제를 감당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가겠다는 것과 같다. 그가 그 몫을 감당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가 그 몫으로 인해 충분히 아파하고 털어버릴 수 있는 순간을 침범하는 것과 같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나에게 타인의 삶을 재단할, 판단할 자격은 있을까.



살아가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아픈 날이.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가득한 날이.

그로 인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


하지만 기억하자.

아플 때는 충분히 아파하자. 마음껏 아파한 뒤 털어버리고 씩 웃자.

무거울 때는 잠시 내려놓고 쉬었다 가자. 뭉친 다리도 풀고 스트레칭도 하고.

우중충한 장마가 지나고 난 뒤엔 따스한 태양이 뜬다더라. 






이전 02화 감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