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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May 09. 2016

어른이란 이름의 꿈

우리의 마음속엔 각자가 꿈꾸는 '어른'이 있다.

어렸을 적 내게는 꿈꾸던 '어른'의 모습이 있었다.

내가 꿈꾸던 '어른'은 언제부턴가 내 꿈이 되었고, 나는 그 꿈을 마음속 깊이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 생각했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때론 좋지 않은 일도, 때론 좋은 일도 나를 찾아왔지만 나는 그 일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내가 꿈꾸는 어른에 가깝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며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텼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내가 살고 있던 현실과 내 꿈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울감이 찾아왔고 뜬눈으로 밤을 지내우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던 어른이란 존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든 관계가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더라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사람들의 고민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 나는 어렸던 때부터 그 모든 만남들을 어려워했고 지금도 사실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보이는 버릇이 하나 있다.


'마음을 최대한 덜 주는 것. 내가 힘들어하지 않을 만큼만.'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이만큼 준다고 해서 이만큼 돌려받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은 참 간사했던 것 같다.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마음을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이만큼은 주겠지, 하는 기대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엔 항상 있었고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면 나는 실망했고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상처를 받았다며 마음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마음을 주지 않는다 해서 내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찝찝함이 있었고 그 찝찝함은 꽤 오랜 시간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수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그 찝찝함의 정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때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소속감을 느껴야 조금은 행복이란 감정에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아프기 싫단 이유로, 상처받기 싫단 이유로 많은 인연들을 떠나보냈었고, 스스로를 외로움이라는 시간 속에 가둬놓기도 했었지만 그 시간들이 지나서야 내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나만 어려웠던 게 아니구나.'


누군가와 관계 맺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생활양식과 환경 속에서 자란 누군가와 나 사이에 아주 작은 유대감이 생기기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희생도, 노력도, 아픔도 필요한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와의 관계 맺음 속에는 아픔이란 과정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별을 통해 성장하다



중학생 때였나. 태어나 처음으로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당시 우리 반 친구들 모두 문상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는 동안은 사실 별 느낌이 들지 않았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밖과 확연히 달랐다. 짙은 슬픔이 묻어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는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몇 번 문상을 갈 일이 있었다. 가서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드리고, 위로를 건네고,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 말고는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슬픔을 나는, 차마 다 헤아릴 수도, 아니, 헤아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건 슬픈 일이구나, 하는 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마음속 깊이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리석지만 마치 나와는 멀게만 느껴지는, 나는 아직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구나, 싶어 내심 안심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내게도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미어지다 못해 찢어지듯 아파왔고 그 마음은 어떤 방법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다. 아픔이 어지간히도 컸었는지 밤에 잠에 들어서는 악몽에 시달렸었다. 무언가를 하염없이 쫓으며 도망치듯 뛰어다녔고 내 심장 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기 일쑤였었다. 그렇게 잠에서 깬 뒤엔 식은땀을 닦으며 꿈이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그렇게 아픔의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날, 감정이 잔잔해지기 시작하며 모든 것이 정돈되듯 초연해졌다. 그리곤 그 날 저녁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의 내 모습은 당시의 내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했었다.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된 나

그 속에서 한없이 아파하던 나

그 아픔을 딛고 수용하던 나


꿈에서 깬 뒤, 그제야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진다는 건 그 자체로 소중한 일이야. 누군가를 만나 관계 맺는 것도 어렵지만, 잘 이별한다는 건 그 이상 어려운 일인 것 같더라. 그러나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에 이제는 그 사람이란 그림자에서 벗어나 두 발로 걸으며 네 삶이란 도화지에 색깔을 칠해가면 되는 거야.'



아마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별에 아파하기도, 만남에 서툴기도. 나에겐 어려운 일들이 너무도 많았고 그 모든 것들이 두렵기도 하다. 지레 겁먹고 주춤하여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날들도 많았다. 어렸을 적 내가 꿈꿨던 어른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하며 한숨 섞인 짜증을 내뱉기도 한다. 혹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거야."


그 뻔한 말들이, 마치 수학 문제의 모범답안 같은 그 말이 나는 참 싫었다. 사람이기에, 나라서 분명 그 사람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거니깐. 그 사람과 나는 같지 않으니까. 설령 그 말이 정답일지라도, 나는 내가 직접 부딪쳐 느끼지 않고서는 도저히 변하질 않는 고집불통이었으니까.


만남이 서툰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

이별이 아픈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

아프다는 건 그만큼 마음을 줬다는 뜻이고, 마음을 준 만큼 아파하는 것 또한 내 마음에 대한 예의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나'라는 양식에 맞춰 배워가고, 적용하고, 넘겨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지내며 한 층 한 층 올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꿈꾸던 '어른'이란 이름의 꿈에 다가설 수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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