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두 번의 크리스마스

도착하니 또 크리스마스?

by 홍세구

2024년의 크리스마스는 이틀이었다.




드디어 출국날, 2024년 12월 25일.

자그마치 28인치의 캐리어를 가득 채운 상태로 인천공항에서 친구와 만났다.


"친구야. 이제 출국하면 세상에 아는 사람이라곤 너랑 나밖에 없어."


장난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사실 엄연한 사실이었다.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시 수화물이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몸이 아파서 계획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언니가 돌봐주기로 한 우리 예민한 고양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나열한 일들 모두 일어날 확률이 희박했지만,

걱정 인형 수준인 내 머릿속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를 안심시킨 생각은 하나였다.

그래도 둘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나는 8박 9일동안 만큼은 나의 유일한 인맥이 되어줄 친구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옐로나이프까지 가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항공사는 에어캐나다.

연착으로 악명이 높은만큼 이번에도 연착되었고, 예상보다 조금 늦게 이륙길에 올랐다.


IMG_0229.jpeg 기내에서 찍은 사진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나는 꼭 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1. 2년 짜리 워홀비자(work permit) 오픈하기.

2. 짧은 말을 하더라도 완벽한 문장으로 말해보기.

3. 캐나다에서 파는 고양이 사료와 모래 종류에 대해 알아보기.


1번은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된 이유였기에 반드시 해야했고,

2번은 혹시 워홀을 가게 될 경우 내 영어 실력이 어디쯤에 있는지 판단해야 했기에 필수였고,

3번은 인터넷으로 알아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정보가 없어 발품을 팔아서 알아봐야 했다.

혹시 여행이 재미없더라도 이 세 가지만 완벽하게 해낸다면 성공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인천에서 캐나다 벤쿠버까지는 10시간.

벤쿠버에서 환승한 비행기로 옐로나이프까지는 2시간 30분.

우리는 항공권 비용을 아끼기 위해 벤쿠버에서 8시간 레이오버하는 선택지를 택했고,

벤쿠버 공항을 구경하고 밥 먹고 하면 시간은 금방 가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벤쿠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은 와장창 깨졌다.


우리가 도착장 쪽에 머물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공항이 협소하고 어두웠다. 식당이나 가게도 종류가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비쌌다.

게다가 공항치고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어두웠다.

나는 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여기 지금 크리스마스잖아?"


분명 인천에서 25일에 출발했는데, 시차 때문에 도착했더니 또 25일이었다.

그러니까 2024년의 크리스마스는 이틀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내게 있어서는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출국하느라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고,

도착한 벤쿠버 역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영미권 사람들은 24일에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25일에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니 25일 대부분의 가게들은 휴무였고 이런 날에 밖에 나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공항 근처에 아울렛이 있어서 구경할까 했지만 이 역시 휴무날이라 오픈하지 않았다.

이러니 내게 있어 캐나다, 그 중에서도 벤쿠버의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다'였다.

과연 워홀을 와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 이때까지는 그랬다.


그래도 처음 방문한 영미권 국가의 공항이었기에 별 거 아닌 것들도 신기했다.

IMG_0235.jpeg 벤쿠버에서의 첫 끼. 멕시코 스타일의 또띠아(?)
IMG_0236.jpeg 별 거 아니었지만 신기했던 제로 콜라

처음으로 들러본 가게에서 영어로 구입해본 멕시칸 스타일의 음식도 신기했고,

데워달라는 내 영어 표현을 직원이 한 번에 알아들어 줬을 땐 뿌듯하기도 했다.

또 영미권에서 파는 콜라는 뭐가 다를까 싶어 설레기도 했다. (물론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저 또띠아가 2만원이라는 어마무시한 가격이라는 부분은 살짝 잊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이틀이라는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작은 설렘과 커다란 피곤함과 함께 보낸 뒤 옐로나이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각에 옐로나이프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과제를 맞닥뜨렸다.



"우버가 안 돼서 콜택시를 불러야해."

keyword
이전 03화계획이 너무 커져버렸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