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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Jun 09. 2021

9통, 4시간, 9,000보의 하루

'우웅' 진동이 울리자마자 휴대폰을 움켜잡고 일어났다. 새벽 다섯 시 십분, 미라클 모닝이라도 실천하는 양 아내와 함께 방을 나왔다. 일원역에 위치한 병원을 가려면 강남순환고속도로를 통과해야 하는데 출근러시와 합쳐지면 답이 없기에 좀 기다리더라도 일찍 출발해야 했다. 어린이집 등원은 장모님께 부탁드리고 영상 CD, 요양급여 의뢰서를 챙겨 차를 탔다.(처가와 우리 집은 길 건너 바로 맞은편에 있다.) 병원 정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암병원 1층 이비인후과에 도착하니 오전 7시, 자정부터 금식했던 터라 정수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직 슬라이드는 안 가지고 오셨나 봐요." 담당의가 요양급여 의뢰서를 보면서 혀를 길게 내밀어 보라며 성대를 살폈다. 성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조직 슬라이드를 보고 이야기 하자며 짧게 진료를 마쳤다. 대기실 밖 간호사가 CT, 피검사 등을 하려고 하는데 금식 여부를 확인하고는 당장 검사예약을 진행했다. 이미 인하대병원에서 유두종 암세포는 확인한 터라, 수술은 불가피했고 수술 상담실 앞 대기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와 딸, 노부부 제각각 대기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7월 5일이 가장 빠른 날이네요." 담당 간호사가 운을 떼자 아내가 나를 2초간 쳐다보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우리가 생각한 마지노선은 적어도 6월 말, 초기라고는 하나 전이 소견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너무 늦어지면 인하대병원도 고려했던 차였다. 보통 빅 5급 병원은 수술 대기가 3개월 이상이라고 하기에 나름 잘 잡혔다고 생각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검사실로 향하려는데 이모가 일찍 되는 날이 있으면 알려주기를 말이라도 해보라고 하셨다. 동분서주하는 간호사에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 주저했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에 혹시 자리가 나면 알려달라고 재차 부탁했다.


9통, 4시간, 9,000보. 채혈 통, 진료시간, 이날 걸음걸이를 잰 숫자다. 세상에 사람은 많으니 그만큼 아픈 사람도 많고 각자 삶을 굴려가던 삶에 암이라는 병이 그들을 이 순간 여기에 묶어두었다. CT 조형제 주사를 맞고 급속도로 움직이는 기계 속에 달아오르는 그 기분을 누가 감내하고 싶을까. 조직 슬라이드를 빨리 내야겠다 싶어 인하대병원에서 보증금 10만 원을 내고 다시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들렀다 집에 오니 여섯 시 오분. 꽤나 많은 것들을 처리했다고 아내와 서로를 격려하며 닭볶음탕을 마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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