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ight Jun 08. 2021

흔들거리는 건 그네일 뿐이다

"가운데 있는 갑상선은 암이 맞고 초기 단계고, 임파절에 일부 전이 소견이 보이는데 그건 수술장에서 확인해봐야 한다고 하네." 동화책을 들이대는 17개월 아들을 옆에 두고 최대한 간결히 아내에게 설명했다. 심란하다고 하는 애기 엄마 손을 잡으며 닭볶음탕을 준비하던 칼은 내려놓자고 말했다. 아내는 수술을 빨리 받는 게 중요하다며 당장 일자를 잡자고 했고, 나는 기존에 담낭용종을 추적 관찰하던 삼성서울병원에서 외래와 수술을 진행하고 싶었다. 일단 친가와 처가에 진단 결과를 말씀드리고, 회사 실장님께만 보고했다.


갑상선암이 예후가 좋다고 하나 전이 소견은 퍼지고 있다는 말이니 수술이 빠를수록 좋은 건 명백했다.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로 접속해보니, 5월 11일 오전 자리가 비어있어 바로 예약했다. 당장 수술을 잡자는 아내도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장모님과 통화를 마치고 알아보자며 닭볶음탕 준비를 마저 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왜 담당 의사가 진료 결과를 빨리 들으러 오라고 했는지, 작년 건강검진 때 결절 소견 듣고 큰 병원 가보라고 하지 않았는지 묻는 뉘앙스 말이다. 30-40대 여성에 많이 발견되는 게 특징인데, 30대 남성에게 결절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악성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작은 결절이라고 귀찮다고 진료를 미룬 내 탓이 컸다. 작년 6월경 초음파 검사로 확인된 게 암이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악성으로 변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어린이를 위한 일 년 중 단 하루인 어린이날을 맞아 오래간만에 형님네가 처가로 왔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도시락을 픽업해 전쟁 같은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장모님이 운을 떼셨다. 형님과 아주머니가 '암이요'를 동시에 외치는 찌찌뽕이 연출되고, 고모부를 매우 좋아하는 외조카가 매달려있던 목을 놓아주었다. 급 숙연 해진 분위기에 그동안 증상은 없었는지, 진료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동갑인 형님은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겼고, 장인어른께서는 당분간 음주가 불가능한 사위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시며 카스 두병과 처음처럼 한 병을 끝까지 묵묵히 비우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놀이터에서 비눗방울을 불었다. 둥글둥글한 것들이 뽀르르 가다 팍 터지니 좋다고 난리다. 키보드 글씨보다 작게 보이는 비행기를 보면서 그네를 흔들었다. 아들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아내, 고모부가 제일 좋다고 달려드는 조카 그리고 처가 식구들. 혹 마음이 흔들릴까 타고 있던 그넷줄을 더 꼬옥잡고 몸을 튕겨냈다.  

이전 01화 아만자가 된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