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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Aug 29. 2021

별것 아닌 암은 없다

삼성서울병원 본관동과 암병원을 잇는 브릿지에 바깥을 볼 수 있는 통창이 있다. 아침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해가 쏟아지는데 나무 의자에 앉아있으면 병원인지 미술관인지 싶을 정도로 풍광이 좋다. 복도라기에 더 큰 연결통로를 지나다 보면 의료진, 의약품 영업사원, 환자, 보호자 등 각자 목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수술을 받을 사람, 받 사람, 할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게 5호선 광화문역에서 환승하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살기 위해 병원을 찾은 사람, 살리기 위해 병원에 출근한 사람, 밥벌이를 위해 지하철을 타고 월급을 주거나 받는 사람. 별 다를것 없는 삶의 치열함이 여기 병원에도 존재한다.




나른한 몸을 참고 소변을 봤다. 몸이 마취를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겠거니 했다. 2인실로 옮기자 민머리 노인분이 무슨 암이냐고 쉰 소리로 물었다. 와이프가 갑상선암이라고 대답하니, 뭐 별건 아니네 라는 식으로 말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별것은 아니지만 '방금 목을 째고 왔습니다'라고 응수하려다 배게만 고쳐 뉘었다. '별것 아니라는 말' 병가 내기 전 꽤나 많이 들었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 아니냐, 남자도 걸리는 거냐, 뭐 금방 수술하면 나아지는 것 아니냐. 진심으로 수술이 잘 되기를 빌어주시는 분이 대부분이었지만 큰 수술은 아니라는 반응도 있었다. 워낙 수술 예후가 좋아 그러는지, 아니면 암 진단 보험금도 300만 원이 채 안 나올 만큼 한국에서 흔한 질병으로 미디어에서 다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흔한 질병이 내 이야기가 되면 식욕이 떨어지고, 밤에 잠도 설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술장을 들어가며 내 아내와 아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직접 겪어보면 착한 암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입원 생활은 식사, 진료, 투약이 계속되는 단조롭지만 선명한 루틴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부갑상선은 잘 작동해줘서 손떨림도 없었고 칼슘을 별도로 복용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목 중앙부에서 시작해 왼쪽 힘줄 끝까지 한 땀 한 땀 꿰매진 약 12센티미터 상흔을 이리저리 돌리는 게 힘들었다. 살이 차오르는 느낌도 들고 고개에 힘을 주고 일어나기도 어려웠다. 상하좌우 스트레칭을 매일 10회 이상해야 근육 유착이 없다고 해서 한 시간 단위로 이리저리 돌려댔다. 림프절로 지방이 돌면 안 좋다고 해서 저지방식 처방을 받았고 식단이 제한되니 단조로움이 더해갔다.


"환자분 목소리 잘 나오고요. 피검사 수치도 큰 이상 없고요. 퇴원하시고 일주일 내에 저희가 잡아드린 외과 가셔서 실밥 푸시면 됩니다. 고생하셨어요." 4박 5일 입었던 입원복을 침대 위에 놓고, 캐리어를 끌고 정문을 나섰다. 퇴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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