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세계 Oct 07. 2020

왜 '러시아 소설'이지?

당신이 러시아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왜 ‘러시아’ ‘소설’이지?


좌 톨스토이, 우 도스토예프스키. 와우

 

  러시아 소설이 유명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같은 대문호의 나라가 아니던가. 세계명작,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리스트에 러시아 소설가들의 작품은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물지만, <죄와 벌>,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러시아 소설 제목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누가 좋은지 몰라서 안 읽나. 좀처럼 읽혀야 말이지. 러시아 소설에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먼저, 분량. 톨스토이의 소설 대부분이 웬만한 소설 3권을 합친 것보다도 두껍다. 책을 읽기도 전에 그 두께에 압도된다. 어떻게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첫 장을 넘기면, 활자가 페이지 가득 빼곡히 채워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어찌나 말이 많은지. 술에 취해 몇 페이지가 훌쩍 넘는 장광설을 늘어놓기 일쑤다. 분량도 많고, 호흡도 길어, 어지간한 집중력으로는 소설의 플롯을 따라기도 벅차다.


  여기에 등장인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약 60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쟁과 평화>가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순간부터,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 약 10여 년의 세월을 그려내고 있다 할지라도, 한 작품에 600명 등장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이 작가 한 명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독자가 직접 느끼기도 전에 인물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책머리에 인물 소개 및 가계도가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땐 꽤나 유용하다. 러시아어는 호칭어가 매우 발달했는데, 사람은 하나인데, 불리는 이름은 한 두 개가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알렉세이,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알료샤, 료샤, 알료시카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책장을 그만 덮고 싶어 진다.


  이것 외에도 장애물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애물을 다 넘어서서 러시아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러시아 소설은 무엇이 다른 거지? 여기에 러시아 문학을 10년 동안 공부한 사람으로서 답을 하자면, 러시아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생(生)을 곱씹게 만드는 두꺼운 텍스트다. 어떤 예술 작품이 가볍겠냐만은, 여타의 유럽 소설과는 구분되는 러시아 소설만의 특징이 있다.


  유럽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근대 사회로 발전했다. 14-16세기 동안 문학, 회화, 음악 등의 예술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 재수용하여 인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는데, 유럽 문명의 문화와 지성이 재탄생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과 학문이 발달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보카치오, 단테, 세르반테스와 같이 예술사에 길이 남는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쉽게도 러시아는 르네상스의 영향권 바깥에 있었다. 여타의 유럽 국가와 비교하여 보다 늦은 18세기 초부터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늦은 만큼 급격한 속도로, 그리고 아주 급진적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문학의 역할이 커지게 되는데, 철학, 역사학, 정치학과 같은 분과 학문에서 다뤄야 할 주제들이 문학 작품의 제재로 등장하게 된다. 러시아 소설가들은 신과 구원, 사회 계급 문제, 삶의 의미, 인간의 존엄, 용서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데 겁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던지기도 하고, 도덕과 법 사이에 비껴갈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만들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빛내는 극단적인 상황을 그리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의 소설가들이 철학가이자 사상가로 불리는 이유인데, 러시아 소설에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아주 복잡하고, 쉽지 않은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다.


  이 복잡 다단한 문제들 덕분에 러시아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혼자서는 미처 생각하기 어려울법한 수많은 질문들로 다시 태어난다.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당신을 꽤나 머리 아프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 질문들은 당신의 삶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질문에 당신 나름의 답을 내는 과정이 당신을 성장시킬 것이다.


  이어지는 글들은 러시아 소설을 조금 더 많이, 오래 읽은 독자가, 당신에게 전하는 유혹의 글이자, 혹은 낚시글이다. 가장 재미있는 소설만을 골라서, 그 소설의 핵심만 들려주겠다고. 그러니까 러시아 소설 한 번 읽어보지 않겠냐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