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키티는 요즘 날마다 안나를 만나고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렸으며, 그녀에게 꼭 라일락빛의 의상을 입혀보았으면 하고 공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검은 의상을 걸친 안나를 보자 그녀는 자기가 지금까지 안나의 참된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통감했다. 이제야 그녀는 전혀 새롭고 예상치 못한 존재로서 안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그녀는 안나에게 라일락빛 의상을 필요 없다는 것, 그녀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녀가 언제나 치장을 초월하다는 데 있다는 것, 치장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데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레이스로 장식된 이 화려한 검은 의상도 그녀에게서는 조금도 돋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틀에 지나지 않았다. 돋보이는 것은 오직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며 동시에 쾌활하고 생기 넘치는 그녀 자신뿐이었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권. 문학동네. P. 161.
'저기다!' 그녀는 침목 위에 흩뿌려져 있는 석탄이 섞인 모래와 그 위로 드리워진 차량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저기로, 저 한가운데로. 그리고 나는 그이를 벌하고 모든 사람들과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자.' (중략)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한가운데가 그녀 앞까지 온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빨간 손주머니를 내던지고 두 어깨 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손을 짚고 차대 밑으로 넘어지면서, 그리고 곧 일어나려고 하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포를 느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한 농부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쇠붙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불안과 기만과 비애와 사악으로 가득 찬 책을 그녀에게 읽게 해 주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확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에 싸여 있던 일체의 것을 그녀에게 비추어 보이고는 파지직, 소리를 내고 어두워지다가 이윽고 영원히 꺼져버렸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3권. 문학동네. PP. 427-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