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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굶어 죽진 않습니다.

월급이 없어도

by 비갑낫을


원동은 대학시절 노스페이스 블로그 원정대라는 대외활동을 통해 만난 대학교 선배로, 당시 우리 팀의 개그 담당이자 분위기 메이커였다.


나는 그가 언젠가 본인의 이름을 건 소극장을 차리거나 KBS 공채 개그맨이 되어 개그콘서트 메인 코너를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만큼 유머와 위트, 리더십과 친화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 직장인을 하기에는 그의 끼가 너무 아깝다고 느껴졌기에.


그러나 그는 꽤나 긴 시간 동안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나 역시 가끔 SNS에 올라오는 그의 담백한 에세이와 맛집 탐험 콘텐츠를 즐겨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당에 이자카야 오픈을 발표한다. 이 오빠 성공해서 국밥집 차리는 게 꿈이라더니만 진짜 하네. 드디어 자기꺼 하네!


언젠가 분명 본인만의 무엇을 할 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진짜 해버리니까 내가 왜 더 희열이 느껴지고 심장이 뜨거워지던지.


나도 먹고 마시는 걸 너무 좋아해서 2009년 오사카에 다녀와서는 스탠딩바를, 2011년 포트루갈에 다녀와서는 포트와인바를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아무튼 이 책을 구상할 때부터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엄청 바쁜 시즌이라는 걸 알면서도 염치 챙길 틈이 없었다.




로리 :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원동 : F&B 매장 운영 및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로리 : 과거 직장생활 이야기를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원동 : 개그맨을 꿈꿨던 예체능 출신의 화장품 회사원은 세상이 자기를 통해 바뀌길 꿈꾸는 어이없는 개인이었습니다.


남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었던 나의 모습과 남들이 인정해 주는 내 모습 사이에서 큰 고민을 하던 인생이었지만 극단에서 배를 곯는 불안한 삶 보단, 안정적인 길을 택하여 대기업 사원으로 10년을 살아왔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서 성과도 인정받고, 연봉도 두둑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불합리하고 억울했던 일들을 이겨냈던 경험들이 사회에 나와서 좌절감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키워주었어요.


하지만 어딜 가나 000 회사 다니는 누구로 소개되었을 때 남들이 더 알아준다는 생각. 돌이켜보면 그 생각이 저를 10년 동안 저온에서 삶은 개구리처럼 천천히 익어가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분명 좋지만, 나 때문에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그게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어떤 힘든 일이 있거나 앞으로의 삶을 살아나가야 할 때,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칸막이 너머의 임원을 보면서요.


무엇보다 회사원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저를 창업의 길로 내딛게 했어요.


로리 : 직장생활 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원동 : 사실 직장생활이 저한테 굉장히 잘 맞는다고 느껴졌습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두려움이 없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조직에서 저같이 뒤를 안 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을 좋게 봐주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강점을 잘 발휘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회사를 나와서 언젠간 스스로 돈벌이를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지는 전혀 미지수였죠.


그 점이 가장 앞날을 캄캄하게 만들었습니다.


로리 : 퇴사를 결정했을 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나 상처받은 말이 있었는지?


원동 : 제 앞에서는 앞날을 다들 응원해 주시고 서로 도와주려고 하셔서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다만 집에는 비밀로 하고 퇴사했는데, 아침마다 옷을 갖춰 입고 출근시간에 나와서 걱정 안 시키기 위해 카페에서 일을 봐야 하는 시간이 두 달 정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결국엔 국민보험공단에서 직장가입자 해지 우편을 보내는 바람에 들통났지만, 어머니가 네가 뭘 해도 잘할 건데 왜 거짓말을 하냐, 거짓말하는 행위가 더 슬프다고 하여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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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 다른 삶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해줄 말은?


원동 : 직장인의 삶이 자영업자의 삶보다 못하지도 않고,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새로운 삶을 준비하시려고 한다면,


내려놓았을 때 리스크를 가장 많이, 현실적으로, 디테일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보셔서 내가 월급 없는 압박을 견딜 수 있는지 고민해 보시 길 바랍니다.


근데 생각보다 굶어 죽진 않습니다.


로리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원동 : 용기를 내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만 세상에 모든 일은 시작하는데에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배웠습니다.


로리 : 자유롭게 본인 홍보를 해주세요.


원동 : 이 글 보고 인스타 wondongi로 연락 주시면 카와우소, 쿨캣, 해온에서 정말 많은 서비스 팍팍드립니다.




나는 몇 년 만에 마주한 그의 위트 섞인 답변에 절로 웃음이 났다. 월급이 없어도 생각보다 굶어 죽진 않는다니...


그날 이후로 내 마음속에 이 문장이 가슴 깊이 자리했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용기를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월급이 되어버렸는데, 그 핑곗거리를 발로 뻥 차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 그리고 창업 N년차의 그가 직접 겪은 모든 과정이 응축된 깨달음이라면 한 번쯤 용기를 내봐도 좋겠다는 배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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