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어요
새아는 나의 N번째 회사 선배로, 퇴사를 하고서도 육아는 물론 본인의 업을 계속 꾸려가며, 배움에 대한 열의도 잃지 않는 대단한 여성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선임의 황당한 요구나 다소 부당한 상황들도 여유롭게 웃어넘기며 맡은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스타일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늘 있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들에 내가 씩씩거리면 그녀는 항상 유쾌하게 “그래도 뭐, 해야지 어떡해” 하며 웃어넘기곤 했다.
근데 그녀를 인터뷰하며 그 수많은 웃어넘김 뒤에 얼마나 큰 고달픔이 있었을지,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그런 트라우마 유발 족속들에게 쉽사리 에너지를 뺏길 그녀가 아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에 맘껏 도전하며 본인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고, 그런 행동력이 주변에 큰 영감을 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육아와 자아실현 사이에서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선명한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로리 :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새아 : 온라인 쇼핑몰 2개를 운영하고 있어요. 1개는 제가 만물상이라고 부르는 쇼핑몰인데, 그때그때 팔고 싶
은 것이 생기거나, 팔릴 것 같은 것이 생길 때, 카테고리에 상관없이 제품을 올리고 팔아요. 어떤 정체성 없이 아무거나 파는 쇼핑몰이요.
다른 1개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 필요한 제품이 생각나면 그것을 만들거나 찾아서 팔고 있는 유아동 쇼핑몰이에요. 엄마로서의 제 정체성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죠.
로리 : 과거 직장생활 이야기를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새아 : 총 3개의 회사를 다녔어요. 길지 않은 직장인 라이프를 되돌아보면 각 회사의 끝에는 항상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 같아요.
인생 첫 회사는 대학교 졸업 전 대기업에서 했던 인턴 생활이었는데, 거기서 만난 여자 차장님 때문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느 날 숨이 너무 안 쉬어져서 병원에 갔는데 스트레스성 ‘부정맥’이라는 거예요. 그때 의사가 “회사에서 누가 괴롭히는 사람 있어요?”라고 해서 충격적이었죠 ㅎㅎㅎ
나름 우리나라에선 큰 대기업 중 하나인 곳에서, 그래도 여자로서는 많이 승진한, 히스테릭한 여자 차장님이라는 캐릭터를 인생 처음 회사에서 만나고 저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어요.
'아. 대기업은 안 가야지!'
그 큰 조직에서 살아남아 승진하고 버티려면, 저렇게 되는 건가 싶었거든요.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로리 : “퇴사”를 하고 다른 길을 간다는 결정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 사건이 있었는지?
새아 : 코로나로 3살이었던 딸아이가 어린이집도 못 가고 아이와 집에만 갇혀 있을 때 다소 우울해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어느 날 툭 하고 유튜브 링크를 보내줬어요.
스마트스토어로 얼마 벌기... 이런 게 한창 유행하던 콘텐츠였는데, 이거 한번 해보지 그래?라고 해서 본 콘텐츠에서 이거는 나도 그냥 쉽게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스마트스토어가 현재까지 하고 있는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서점에 가면 자기개발 코너를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인스타그램에서도 동기부여 릴스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나를 움직이게 했던 콘텐츠가 있다.
스마트스토어로 월급보다 더 벌어서 퇴사해요! 뭐 대충 이런 식의 강의 팔이 광고였는데 그걸 보고 난 뒤로, 나는 대체 뭘 팔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 뭔가 세상엔 없고, 내가 직접 만들어서 팔 수 있는 거면 참 좋겠는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잠들기 직전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벌떡 일어나 오빠에게 말했다.
우리 야간 라운딩하면 그늘집 닫아서 배고프고 당떨어져서 힘들잖아. 골프 치는 사람들 간식 챙겨가는 건 뭐 매너이기도 하고.
이걸 약간 골프장 가서 사진 찍기도 좋고, 뭔가 동반자를 위해 준비해 온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서 팔아보는 거 어떨까?
요새 도시락 케이크 유행이잖아. 그 상자에 골프 간식을 넣는 거야. 캐릭터도 하나 귀엽게 만들어서 띠지로 두르고, 비타민이나 하나씩 까먹기 좋은 간식 소분해서 소분판매업을 하는 거지!
더 대박이 뭔 줄 알아? 망해도 대안이 다 있어. 만약 안 팔려서 재고 쌓이면 같이 가는 동반자 친구들한테 선물하고 아니면 우리가 다 먹어버리지 뭐!
다음날부터 나와 남편은 곧바로 상품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스마트스토어를 만들고,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어떤 간식을 넣을지 리스트업 하고, 도시락 케이크 상자도 주문하고, 모든 비용에 대한 원가 계산을 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다.
어머, 내꺼하는 즐거움이 이거구나! 골프 간식을 론칭하면서 처음 느꼈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있음은 물론 매일매일 설레고 가슴이 뛰는 경험.
상세페이지 작성하고, 가격 설정하고, 상품을 처음 올렸을 때. 그리고 첫 판매가 이뤄졌을 때의 감동 역시 여전히 생생하다.
대량주문이 들어와서 가내수공업 하듯이 포장을 하는 날도 있었고, 유명 프로님의 유튜브에 우리 상품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제 나도 스마트스토어 덕분에 퇴사하는 거야? 야무진 꿈을 꾸기도 했지만 꼭 그게 아니라도 퍼디버디와 관련된 일을 할 때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결론적으로 보면 골프 간식을 팔아 월급을 뛰어넘는 엄청난 돈을 벌지는 못했고, 퇴사도 못했지만 작은 성공을 하고 나니 세상 못할 게 없다 느껴지더라.
로리 : 회사를 다니면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새아 : 글쎄요... 당연히 그러면 좋은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생각해요. 회사는 영원히 다닐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100세 시대니까요~ (매일 남편한테 하는 말...ㅋ)
로리 : “퇴사”하고 나니까 가장 좋은 점과 가장 힘든 점은?
새아 : 가장 좋은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장 힘든 점은 외롭다.
로리 : 5년, 10년, 30년 후 모습을 상상한다면?
새아 : 30년 후… 의 모습이라면 저는 제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되게 자주 상상합니다. 워너비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에서 구체화해요.
어느 날 제가 좋아하는 부암동의 한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었는데, 문득 주변 테이블에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친구들이랑 만둣국을 한 그릇씩 드시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저 정도 나이가 되면, "부암동에서 친구들과 만둣국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재력과 체력과 여유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힐러’ 역할을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마음이 힘들 때, 어려울 때, 고민이 있을 때 그것들을 털어놓고 마음의 위안을 받고 돌아갈 수 있는 존재? 가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싶어요.
그러고 싶어서 요즘 시작한 공부가 명리학이에요.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관심사로 옆에 두면서 나중에 할머니가 되었을 때, 그걸 바탕으로 고민상담 정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해서요.
30년 후, 그녀와 부암동에서 만둣국을 먹으며 찬란했던 우리의 젊은 날을 추억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