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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

by 비갑낫을

문석과의 인연은 2010년 강남성모안과 캠퍼스마케터 라식해조 활동으로 시작해 벌써 15년을 이어오고 있다.


아이디어 회의한다고 매번 종로 스타벅스 지하에서 만나 결국 치맥으로 마무리했지만 우리 둘 다 라섹을 지원받아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당시 시크릿의 매직이라는 노래가 엄청 유행했는데, 문석은 승헌쓰 뺨치는 실력으로 시도 때도 없이 그 춤을 춰서 중독되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어떤 주제든 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넘쳐났고, 진짜 얘랑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살고 웃다가 죽겠구나 싶은 순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든 잘했던 친구라 졸업하고 나중에 무얼 하려나? 기대했는데 멋진 수트가 잘 어울리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더라.


워낙 누구 하고나 잘 어울리고 친화력도 좋으니 사회생활에 제격일 테고, 임원까지는 무난하게 가겠구나 싶었는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니 사업을 시작했다.


왜 이렇게 나만 빼고 다들 각자 자기 갈길 잘 가고 있는 것 같지? 자기 개발서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데다 귀가 얇아서 동기부여도 잘 받고, 일희일비도 자주 하는 나에게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로리 :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문석 : 현재 익선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동업으로 소주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리 : 인터뷰를 제안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문석 : 아 이 여자가 결국 재미있는 것을 찾아냈구나, 그리고 하는구나. 왜 나는 이런 걸 생각하지 못할까? 역시는 역시다.


로리 : 과거 직장생활 이야기를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문석 : (1년 차) 처음에는 직장생활이 너무 좋았습니다. 뭔가 정석적으로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내가 담당하는 업무가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어요.


(2년 차) 2년 차에는 어느 정도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쌓여 있었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또 진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있었어요.


(3년 차 1분기) 사실 이때쯤에는 업무도 질리고 뭐 하려고 하면 잘 안되고 해서 회의감이 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때마침 여자 팀장님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저는 회사 내 여자 직원들과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터라 팀장님이 누구로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일생일대의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결국 팀장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다른 계열사로 전배를 가기로 했습니다.


(3년 차 2분기) 전배를 간 부서는 저 포함 딱 남자가 3명이었어요. 차장인 팀장과 중간보스인 과장 그리고 막내 주임인 저였죠.


업무도 사람들도 좋아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역대급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보통 주임에서 대리는 승진 누락이 절대 안 되는 게 사내 국룰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저희 팀에 차장/과장/주임 전부 다 승진 연차였어요.


그럼 보통 차장이나 부장이 누락되고 주임은 무조건 올라가야 하는데 3명이 모두 승진하는 건 좀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 주임인 저를 누락시키고 지들은 다 부장/차장이 되어버린 거예요.


50명이 넘는 공채 동기들 중 유일하게 저만 대리 승진이 누락되었어요. 너무 열이 받아서 저는 3주 만에 이직을 해버렸습니다.


(4-5년 차) 이직 한 이후에는 너무 좋았어요. 연봉도 뻥튀기로 오르고, 업무는 너무 재미있고, 성과급도 나오고 진짜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제가 직장생활에 맞다고도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6-7년 차) 문제는 6년 차였습니다. 갑자기 또 팀장님이 바뀌면서 힘들어진 거죠. 그리고 전 더 이상 회사에 뜻이 생기지 않아서 친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을 도와주게 되었고,


워낙에 술을 좋아했던 터라 그냥 이 참에 작은 소주방이나 열자고 제안하여 동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로리 :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용기”내서 “퇴사” 하기로 결심하셨나요?


문석 : 일요일에 술을 마시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다가 "아 시발 그냥 차에 치여서 회사 안 나가고 싶네"라는 생각을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진짜 차에 치는 일이 발생했어요.


심하진 않았는데 그 순간, 아니 내가 뭐가 모자라서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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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 “퇴사”하고 나니까 가장 좋은 점과 가장 힘든 점은?


문석 : 퇴사하니까 가장 좋은 점은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행동에 제약도 안 받고 시간의 제약도 없어요.


가장 힘든 점은 방대한 자유인 것 같아요. 막대한 시간적 여유에 내가 녹아버려서 게을러지게 되는 게 걱정스럽기도 하거든요.


로리 : 직장인 일 때, “퇴사 이후의 삶”을 위해 준비했던 것은?


문석 :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요.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가게 이후의 삶?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인생이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그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사는 거예요. 스트레스 안 받고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제가 늘 준비하는 다음 인생 계획이에요.


로리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관은?


문석 : 아무도 별로 그렇게 나를 신경 쓰지 않으니 의식하지 않는 것.


로리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석 : 어차피 할 거였음 당신은 진작 하고 있었을 것이고, 안 하고 있었음 어차피 스스로 하지 않을 테니까.


본인을 잘 파악하셔서, 전자라면 좋은 서포터를 구해보시고 후자라면 리더가 나타나면 잘 따라가세요.


그래서, 절 구해주실 리더님 안 계신가요? 저는 서포터형 인간이라 서포팅 엄청 잘합니다.


(이렇게 본인에 대한 파악이 잘 되어있는 나 칭찬해.)




가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데, 민폐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타인의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문석의 문장을 떠올린다.


아무도 별로 그렇게 나를 신경 쓰지 않으니, 의식하지 않는 것!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주문이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문석의 업장에 찾아가 얼큰한 순두부찌개에 소주 한잔 마시면서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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