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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공동체에서 느끼는 아이 훈육

적절한 좌절과 욕구의 지연을 가르치는 훈련

by 윤희크


처음 오늘 공동체에 왔을 때, 아이들이 많고 이 아이들이 처음 보는 나를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오늘공동체는 평일에는 대안 학교와 유치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돌봄 타임이 있고 일요일에는 하늘땅 이라는 돌봄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


나는 오늘공동체에 들어오겠다고 오늘공동체 학교 프로그램을 들으면서부터 평일 돌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를 신청하게 되었다.


돌봄 시간을 유심히 보면 이모나 삼촌이 유치부 아이들의 저녁밥시간을 챙기고, 노는 시간에 보호자로 함께 있는데 포인트는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 역동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놀다가 이리저리 싸우거나 맘 상할 일이 있을 때 아이들은 이모삼촌에게 “보고”를 한다.


쟤가 자꾸 내 볼에 코딱지를 묻혀요~부터 내가 먼저 화장실 쓰려고 했는데 쟤가 밀고 갔어요 등등 다양하다. 울기도 잘 운다.


그런 순간에 아이의 말을 충분히 듣고 옳고 그름을 가려주는 것이 이모삼촌의 역할.

처음에는 마음을 수용하나? 어려워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늘공동체에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배우고 난 후에야 판가름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거 같았다.

이 공동체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치 부분 함양에 힘쓰는데 그중 하나가 -타인을 먼저 생각해라, 내 욕구 우선하느라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마라- 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강하게 다르친다.

그래서 누가 저 힘들게 해요~ 쟤가 나빠요~라고 울더라도 다 듣고 나서 그건 쟤가 나쁜 게 아니잖아 네가 하고 싶은 데로 안된다고 우는 거잖아. 정신 차려!라고 한다. 아이의 불만, 아이의 욕구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좌절, 욕구의 지연을 아주 어릴 때부터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원양육자인 부모의 스타일을 따르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바운 이모 삼촌이 강하게 훈육을 하므로 부모와 이모삼촌의 훈육이 똑같다. 아이 엄마 아빠가 아이 혼나는 거 알면 기분 나빠할까 봐, 엄마 아빠 스타일이 그런 게 아니니까… 가 이곳에는 없고, 그런 훈육 개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 공동 육아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공동체는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훈련 시스템을 어른부터 아이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멘토의 적극적 개입을 받아들이는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은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멘토가 지정되고 부모는 아이의 교육에 있어 네가 의사가 되면 좋겠다… 등의 바람을 말하거나 아이에게 다이렉트로 권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멘토로 지정된 이모 삼촌이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며 이 아이에게 어떤 것이 좋을지 지금 얘기하는 게 좋을지 등등을 정하지 엄마 아빠의 바람이나 애정이 바로 영향을 주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애정이 애착이 되고 판단 평가가 되어 서로 괴로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다양한 훈련이 있는데 인사 훈련(어른이나 아이가 인사를 건네면 멀뚱하게 쳐다보는 게 아니라 같이 인사하는 것. 의외로 이게 안 되는 아이가 진짜 엄청나게 많다. 샤이해서, 원래 그래서 등등의 이유로) 간식 금지 훈련(간식 먹느라 밥 안 먹거나 간식으로 남들을 힘들게 했을 때) 등을 하는 3,4살 아이들을 보며 처음에는 엄한 거 아냐? 괜찮나.. 정서가 메말라지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매우 허용적으로 자라난 나의 경우, 그로 인해 좌절을 엄청 부풀려 생각하고 자아상이 비대한 나르시시스트로서 어른이 된 이후 겪은 수많은 아픔과 부끄러움을 생각할 때 이 과정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내 욕구의 좌절과 지연을 경험하는 게 엄청 중요하고 이게 맞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모든 게 내 뜻대로 되고 허용되는 세계에 살다 보니 회사 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내 멋대로 살아왔었다. 배려라는 것도 내 맘대로 했고 나는 좀 잘났지.. 나는 특별하지 하는 맘이 없어지지 않았다.

거칠게 표현하면 잘되면 내가 잘해서고 안되면 남들이 잘못하거나 세상이 날 억까한다고 억울해했다.

여기 아이들은 그런 제멋대로인 어른이 안 되겠구나 하는 순간을 볼 때 안심도 되고 아이들의 앞날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그 훈육 과정에서 나도 성장하는 멈추지 않는 성장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얼마 전 귀한 아들 증후군이라는 글이 화제였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귀하게 커서 어른이 되어 괴로워진 사람. ㅎㅎ


오늘공동체 훈육 시스템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북유럽 얀테의 법칙 얘기도 자주 듣고, 특별하지 않게 자라는 법을, 타인의 귀함을 몸으로 배우면서 자란다. 이 아이들이 만들어 갈 다음 세상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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