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의미 없는 일은 없다.
한국에서도 한국에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마음씨를 그렇게 쓰고 잘 되나 두고 보자.
라며 분노하다가도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계속 있었으면 새 시스템 론칭 준비하며
쏟아지는 온갖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을 테고
그 와중에도 목표보다도 더 매출하라고
손익 왜 이렇게 안 좋냐고 다그칠 텐데
좀비처럼 마지못해 다니느니
차라리 그만둘 수 있게 해 줘서 다행이다.
라고 위안하기도 했죠. 어차피 이 회사의 그 업무는 제 드림잡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가 아니게 만들어주는" 방패"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리고 어쨌든 스웨덴에서 일을 해봤고 그 생활이 어떤지를 알았잖아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는 이런 한국기업밖에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드니 굳이 이 좁은 스웨덴 구직 시장에서 취업에 목을 매야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일하면서 느꼈던 게 여러 개가 있었는데
1.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이든 주어진 일을 어느 정도 이상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취업하기 전까지는 제가 새로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는데, 어쨌든 이번 경험으로 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2. 하지만 영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건 좀 더 공부를 해서 실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
(발표하거나 회의할 때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표현하는데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쓰기도 메일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고객에게 나가는 메시지는 도저히 자신이 없더라고요)
3. 부대끼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마음이 편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대학생 때부터 했고, 스웨덴에서 대학원 졸업할 때쯤에는 매출로 푸시받고 일정에 쫓기고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는 일이면 좋겠다고 적어놨는데, 귀신같이 그런 일을 괴로워하며 또 하고 있더라고요.)
4. 회사를 다시 가니 예전에 회사에 있었을 때 생각한 거랑 똑같은 걸 생각하고 있더라.
(이렇게 월급쟁이로 일해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없는데,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자든 하려면 회사 다니면서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네? 아니면 이모티콘이나 픽토그램 같은 거 만들어보고 싶다, 소설 쓰고 싶다 등등의 회사에서 일하기 싫을 때마다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는데 스웨덴에 와서도 일하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회사를 그만둔 지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언제 그렇게 부대꼈나 싶게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회사는 한번 연락해 봤는데 새로운 담당자가 열심히 하고 있나 보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스웨덴어도 다니고 운전면허도 따고 이모티콘도 그려서 제출해 보고 소설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콩알만 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원서를 넣고 계속 불합격 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만두면서 적었던 ‘하고 싶은 일, 하면 좋을 일’ 리스트에 있는 일들을 천천히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자신 있게 하고 있다고 말하기 부족한 결과라, ’ 엄마, 누구 엄마는 일을 안 하잖아 ‘는 말만 들어도 괜히 내 얘기하는 것 같아서 작아집니다. 이것저것 하다가 안 되면 눈을 낮추고 낮춰서라도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싶은 마음이지만 일단은 좀 더 견뎌보려고 합니다. 리스트에 있는 일이 끝날 때까지만 저에게 시간을 줘보려고요.
분노와 울화가 가득했던 이 시리즈도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제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