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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Nov 22. 2024

준비

마음속에 품은 사직서 4

할 일이 많아져서 바빠도,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걸 하는 건 힘들어도 재밌었다. 하지만 팀장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건 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예전이라면 팀장이 시키는 일도 중요도나 일정, 업무로드에 따라 적절히 커트했었다. 사실 아무리 똑똑한 마케터라도 내는 아이디어들이 백 프로 성공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10개 던지면 그중에 서너 개는 하나마나했고 서너 개는 보통이고, 나머지 서너 개는 할만했다 싶은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한 개라도 남들한테 말할 만큼 임팩트가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 아이디어의 원천은 본인일 때도 있고, 영업팀의 요청일 때도 있고, 시장의 흐름일 때도 있고, 팀장이나 더 윗분들의 주문일 때도 있었다. 몸이 하나였기 때문에 어떻게 다양한 요구들을 적절하게 잘 정리해서 실행안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이건 올라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새 사업부장님은 신규 브랜드 프로젝트 리더 시절부터 아무리 위에서 시키더라도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거부하기로 유명했다. 최소 1-2년은 꾸준히 이야기해야 브랜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소비자들이 인식을 한다고 하는데, 자꾸 다른 의견에 휘둘리면 원하는 이미지를 인식시키는 게 힘들다는 이유였다. 브랜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윗사람이라고 해서 잠깐 생각한 뒤 던지는 의견들로 왔다 갔다 하면 일관된 메시지를 주기 힘들다고 믿었다. 겨울은 그런 강한 의지가 있다는 게 한편으로 부러웠다. 겨울이 윗선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건 그런 강력한 메시지 주고 싶다는 의지보다는 과도한 업무 로드때문이었다. 겨울에게는 이미 위에서 시킨 다른 일들이 많았고, 다른 일을 추가하면 이미 시킨 일이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알려달라고 묻고 새로 떨어지는 일들을 받거나 거절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꼿꼿하게 자기주장을 관철시켜 부러움을 샀던 그분도 위로 올라갈수록 더 윗분과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위에서 급작스레 시키는 일들을 교묘하게 자기가 원래 하고 싶은 것과 잘 버무려 보고해서 오케이 사인을 얻어내는 것, 그게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서 얻게 된 그분의 처세술이었다. 어쩌면 한 단계가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겨울은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잘 버무려내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이런 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팀장의 제안에 기존에는 ‘이러이러해서 좀 힘들 거 같다’고 말했다면, 마음을 바꿔먹은 후에는 ‘이런 식으로 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게 될 것 같아서 생각해 낸 대답은 아니었다. 그냥 팀장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 전제 하에서 그 제안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서 대답해 줬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 일을 할 때면 도대체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5월에 가정의 달을 맞아 핸드크림 기획세트를 내자는 의견도 그랬다. 일반적으로 핸드크림은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10월 말부터 팔리기 시작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핸드크림을 생산하지 않고, 그전에 만들어놓은 재고 소진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영업팀에 물어봤을 때도 5월 핸드크림은 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가볍게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일 수 있다는 팀장의 아이디어를 겨울은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전자는 말 잘 안 듣는 팀원이지만, 후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주는 조력자이니 팀장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후자가 맞았다. 최대한 예쁜 디자인으로 일정에 맞춰 세트가 나올 수 있도록 챙기고 있었지만 때때로 현타가 왔다. 바쁜데 안 될 것 같은 일을 난 왜 하고 있을까. 꼭두각시가 된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스웨덴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도 시작했다. 아이들 어린이집은 예전에 스웨덴에 살 때 모두 대기에 넣어놔서 대기줄이 많이 짧아져 있었다. 스웨덴의 새 학년은 8월 말에 시작하니 그때쯤이면 어디든 한 군데는 자리가 날 것이다. 겨울도 할 일이 필요했다. 이미 취직이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해 봤기에 우회로를 생각했다.


일단 대학원을 가자. 부랴부랴 영어시험을 쳤다. 서류합격을 하려면 최소 토익 900은 넘어야 한다는 상경계열 출신이래도 벌써 십수 년 전 일이었다. 어학연수는 못 갔지만 방학 때 하루종일 수업을 듣고 스터디하며 만들어놨던 영어점수는 이미 겨울의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아이 낳기 전에 MBA나 써볼까 싶어서 조금 공부하던 게 도움이 되었다. 벼락치기하듯 급하게 공부해서 봤지만, 미국에 유명한 MBA를 갈 만큼 실력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러려면 아무리 똑똑한 친구도 최소 몇 개월은 붙잡고 공부를 해야 했다. 겨울에게는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겨울이 가려고 하는 곳은 미국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유럽의 변방, 스웨덴에 있는 학교들이었다. 경영학과, 마케팅,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겨울이 하고 있는 것과 관련 있어 보이는 모든 과에 원서를 넣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제일 좋은 대학에 제일 좋은 과에 들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간판이 주는 혜택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겨울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겨울을 위해 가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공부를 위해서 간다면 스웨덴 대학원을 가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한국에서 미국대학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 하지만 지금은 스웨덴에서 할 일을 찾으려다 보니 대학원을 가는 게 아닌가. 그래서 가장 큰 기준은 네임밸류도 교육의 질도 아닌 스톡홀름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위치인가였다.


적어도 스웨덴의 학위가 있다면 지금이랑은 상황이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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