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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Nov 28. 2024

합격 그리고 영어

마음속에 품은 사직서 6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급하게 보느라 영어점수가 좋지 않은데도 다행히 스톡홀름에 있는 대학교에서 합격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케팅 대학원. 그게 겨울에게 기쁜 소식을 들려준 곳이었다. 겨울을 사실 마케팅을 학문으로써 연구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대학시절 들었던 경영학 과목 중에서 제일 재미있던 게 마케팅이긴 했지만, 실무를 하면서 배운 게 크게 적용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을 성공시키는 건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작용했다. 4P, STP,  SWOT 분석이니 제품 수명 주기하는 이론들은 너무 재밌었지만, 그에 맞게 전략을 짜도 반응이 미미한 경우가 많았고 생뚱맞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몇 년 전인가 행사가 없으면 한 달에 백개나 팔릴까 말까 하는 메이크업 베이스 제품이 하루에 백개 넘게  나가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다음 달 행사용으로 미리 생산해 놓은 양을 포함해 3개월치 재고를 다 쓰고도 매장에서는 계속 제품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따로 광고를 한 것도 아니었고 공들여 개발한 제품도 아니었다. 기존에 다른 브랜드를 겨울이 담당하는 브랜드에 맞게 살짝 바꿔 출시한 구색용 제품이었다. 매출을 매장별로 내려보니 명동에 있는 한 매장의 매출이 유독 튀었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얼마 전부터 중국에서 온 보따리상이 매대에 있는 제품을 쓸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사에 급히 재고를 요청해서 계속 들여왔는데, 재고가 있는 데로 가져가는 통에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해외마케팅팀의 중국 담당과 중국 홍보 담당 에이전시에 수소문해서 찾아보니, 한 유명 중국 배우가 그 제품에 대한 글을 자기 SNS에 올린 게 원인인 듯했다. 돈을 쏟아부어서 블로그니 SNS에 도배를 해도 잠잠할 때가 많은데, 그 배우의 영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스치듯 올린 글 하나에 난리인 걸까. 이런 건 정말 의도치 않은 성공이었다.


한 번은 당시 드라마로 급스타덤에 오른 배우를 광고모델로 계약하고는 매장 디스플레이를 모두 그 배우 얼굴이 들어가도록 꾸미고, 크게 얼굴을 박아서 기획세트를 만들어 큰 행사를 계획해 놨는데, 배우의 사생활 스캔들이 터지면서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썩은 적도 있다. 제품만 있는 다른 사진들을 급하게 찾아서 제작을 의뢰하고 기획세트는 전량 반품받아서 일반 케이스로 재포장해서 내보내는 데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었다. 이렇게 시장상황이나 우연한 사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마케팅을 실제로 경험해보지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던 교수들이 자신보다 더 잘 마케팅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겨울이 경쟁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과정을 끝나고 나면 이론과 실무를 모두 잘 아는 마케팅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영어학교와 영어유치원에서 자리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년 전 스웨덴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귀동냥으로 들은 영어로 곧잘 의사소통을 했던 하준이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빠른 속도로 영어를 잊어버렸다. 2백만 원 가까이하는 원비도 부담이었지만,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일찍 끝나는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건 겨울의 능력밖이었다. 무조건 종일반이 가능하고 등하원 버스를 운영하는 곳에 보내는 것이, 겨울에게나 육아를 도와주시는 엄마를 위해서도 행복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겨울을 초조하게 했다. 겨울이 나온 고등학교는 그다지 좋은 학군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거기에선 나름 전교에서 놀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애들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화 화제가 영어공부로 향하자 한 친구가 영어유치원 숙제라며 한 사진을 보여줬었다. 7살 난 아이가 영어로 A4 두 페이지 분량으로 그림을 설명하는 글을 써놨는데, 스펠링도 문법도 꽤 그럴싸했다.

와, 나도 영어로 쓰려면 이렇게 못 쓰겠다.


영어로 글만 쓰려면 문법이 틀릴까, 어색한 한국식 표현으로 쓸까 걱정되어 한 문장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겨울으로서는 친구 아들이 한 영작 숙제는 꽤 충격이었다.

영어유치원도 잘 맞는 애들이 있어,
첫째는 돈이 하나도 안 아까운데,
둘째는 똑같이 다녀도 하나도 남는 게 없어.


그렇게 말은 해도 영어유치원이 효과가 있긴 한지, 지인이 올린 SNS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최근에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4살짜리 딸이 영어로 발표를 하는 동영상이었다. 아이 티가 잔뜩 나는 목소리지만 내용을 다 외웠는지 막힘 없이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리 맞벌이한데도 이 월급 받아서 애들 영어유치원 보내고 시터 이모님 쓰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신기했다. 결혼할 때 집을 장만해서 갚아야 할 대출금이 없었거나, 친정이나 시댁이 넉넉해서 애들 유치원비를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유치원에 대한 논란은 비싼 비용뿐은 아니었다. 말만 유치원이지 사실 학원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 모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에게 어설프게 영어를 주입했다가 전체적인 언어발달마저 해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외고를 거쳐 명문대에서 어학과를 졸업한 뒤 겨울과 같은 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혜원 씨는 어릴 적 영어유치원을 나왔던 걸 꽤 만족스러워했다. 늘 영어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셨던 혜원 씨의 어머니는 내 아이에게는 이런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하에 혜원 씨를 영어유치원에 보냈다고 했다. 원래도 똘똘했던 혜원 씨는 금세 적응을 했고, 덕분에 유학을 다녀온 건 아니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단다.


겨울의 현재 상황에서 영어유치원은 무리였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영어 때문에 생기는 한계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겨울의 대학원 지원만 해도 그랬다.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더 좋은 학교로 지원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스웨덴으로 가면 그렇게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영어유치원과 영어학교를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여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공립 같은 학교라 학비도 비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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