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파장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미숙 Oct 27. 2023

파장_1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잠깐 누워 있어야지 했는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벌써 오후 6시가 넘었다. 네 시간 넘게 잠을 잤다. 직장을 휴직하고 집에 있으면서 나는 야행성 인간이 됐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정신이 맑아졌다. 점심을 거른 채 잠들어서 배가 고팠다. 냉장고 문을 열고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벨 소리는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 거절 버튼을 누른다는 게 그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은 대뜸 내게 701호 딸이냐고 물었다.


-누구시죠? 

-나는 508호네. 

-아,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신지.

-밥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엄마가 한 시간 전부터 전화를 계속 안 받아.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고. 


전화해 보겠다고, 감사하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지만, 엄마 또한 상대방 자녀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508호라 말한 분은 엄마 절친이다. 엄마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에게 701호로 통했다. 나는 701호 딸로 불렸다. 그들은 결혼 후에도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701호 딸, 하면서 인사를 받았다. 상대방이 701호 딸 하면서 나를 보고 웃을 때마다 그 웃음에는 우리 집 사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가 풍겼다. 엄마 또한 나에게 친구를 얘기할 때 상대방을 그렇게 불렀다. 301호가, 508호가. 생각해 보면 서로 간에 이름을 헷갈리거나 사는 곳을 혼동할 일이 없는, 간단하고 명쾌한 호칭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도 신호음만 들렸다. 나의 엄마, 김부덕 여사는 전화를 자주 받지 않았다. 핸드폰을 놔두고 외출하기 일쑤였고, 충전을 안 해서 연락이 안 된 것도 다반사였다. 본인에게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기를 챙겼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엄마를 잊었다. 


학교 복직이 한 달 뒤로 다가왔다. 수업 관련 서류를 보다가 엄마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 시각이 밤 10시다. 아직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상황은 엄마가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는 거고, 그렇다면 필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일흔이 넘은 엄마가 걱정됐다.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에게 가려면 차로 두 시간이 걸렸다. 가볍게 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기에 차 키를 들고 거실에서 잠시 망설였다. 생각난 김에 그냥 엄마 얼굴 한번 보러 가는 거지 하면서 집을 나섰다. 마음과 달리 엄마 생각을 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미국에 사는 오빠는 모르더라도 언니에게는 알려야지 싶었다. 차에 시동을 켜기 전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별일 없겠지만 시간 되면 가까이 있는 네가 한번 가 보면 어떠니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엄마랑 조금 더 가까운 거리라는 이유로 매번 이랬다. 그동안 쌓인 서운함과 답답함을 양손에 가득 담고 운전대를 잡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