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벗어놓은 속옷을 빨았다. 베란다에 블라인드 커튼이 쳐진 걸 확인하고는, 급하게 빨래를 널러 가다 거실과 베란다를 가로막는 유리창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빨래를 담은 통이 엎어지면서 흐른 물에 발이 미끄러졌다. 거실 바닥에 그대로 넘어졌다. 엄마는 거실 한가운데 큰대자로 넘어진 직후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감지하지 못했다.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네, 하면서. 천장 벽지에 묻은 갈색 얼룩이 눈에 띄었다. 저 얼룩이 언제 생겼을까, 없애려면 의자 위에 올라가 닦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참에 집 도배를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그저 가볍게만 생각했다.
508호와 저녁 약속이 생각났다. 이제 일어나서 옷을 입어야겠다며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허리와 골반 쪽에 날카로운 통증이 덮쳤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상태가 더 나빠질 것 같았다. 천천히 원래대로 누웠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몸을 움직이자 더 큰 통증이 찾아왔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벌거벗고 누워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에라, 모르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천장을 향해 마음껏 고함을 질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급기야 평소 즐겨 듣는 트로트 메들리를 필두로 마지막은 나훈아가 부른 아, 테스 형 세상이 내게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를 연달아 부르기까지 했다. 속이 후련했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다친 것보다 혹시나 벌거벗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면 무슨 망신인가 하는 생각이 엄마를 괴롭혔다. 엄마는 거실에 있는 빛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창문을 통해 들어온 어둠이 거실에 있는 사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삼켜버리는 것을 지켜봤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자신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타인에게 자기의 모습을 들키느니 차라리 그편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말을 마친 엄마는 그때 바닥에 누워 있는 자신에게 산신령이 나타나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큰 소리로 입을 옷을 달라고 말했을 거라며 처음으로 웃었다. 나도 같이 쿡쿡 웃었다. 우린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하고 동시에 외쳤다. 유리문에 이마를 찧어서 넘어졌다고 이렇게 다치는 게 말이 되냐고 했더니, 엄마는 늙으면 모든 게 잘 부러진다고 했다. 단단했던 뼈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