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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파장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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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미숙 Oct 27. 2023

파장_4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주위에 있는 고층아파트로 인해 더 초라해 보였다. 거실은 어제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지금까지 꾹 닫혀 있는 거실 유리문을 열었다.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봤다. 꽃샘추위가 요 며칠 기승을 부리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햇살이 거실에 들이비쳤다. 바깥 풍경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불행은 언제나 평온한 일상에서 소리 없이 다가왔다.


엄마를 막은 이 문은 30년 동안 엄마가 매일 베란다로 나가는 통로였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거실에 투명한 유리로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가 집 안에 떠도는 냉기, 외로움, 분노, 좌절 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선한 바깥 공기를 제공해 주는 통로였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그 통로를 열지 못했다. 통로 앞에서 뒷걸음질 쳤다. 


엄마가 퇴원하기 전까지 집을 비워 둬야 하기에 대충 집 정리를 했다. 장롱을 열었다. 엄마의 취향대로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무난한 옷 두어 벌을 챙겼다. 화장품, 칫솔, 수건, 속옷을 쇼핑백에 넣었다. 전기 코드를 다 뺀 뒤 어제부터 켜져 있던 거실 형광등을 껐다. 다시 한 번 거실을 둘러본 후 집을 나왔다. 마트에 들렀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성인용 기저귀였다. 나는 성인용 기저귀를 산 뒤 병실에 돌아와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었다.


엄마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는 건 24시간 누군가가 옆에서 엄마의 손과 발이 돼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언니에게 전화로 엄마 상태를 설명했다. 남편에게도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알았다고 답장이 왔다. 저녁에 도착한 언니는 뼈만 붙으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만 되풀이했다. 언니의 동의하에 나는 엄마에게 간병인 얘기를 꺼냈다. 요즘은 자식들 모두 맞벌이라 할 수도 없고 엄마에게도 전문적인 손길이 더 낫다며 간병인을 두자고 했다. 내가 며칠은 한다고 해도 그 이상은 무리였다. 하지만 엄마는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몸을 맡기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벌거벗고 누워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언니와 나는 엄마가 잠이 들자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간간이 불면서 하늘은 별 하나 없이 짙은 어둠이 깔렸다. 언니는 평소처럼 말이 없었다. 우리는 엄마가 언제 저렇게 늙었나 하는 깊은 회한과 우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하는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언니 생각은 어때?”

“글쎄. 나는 병간호할 상황이 아냐.”

“나는 뭐 되나. 우리 모두 힘들지.”


언니는 결혼 전에도 집에 일이 생기면 한발 뒤로 물러서며 네가 해야지 하는 듯이 행동했다. 지금처럼 내가 휴직 중이란 걸 말하지 않았음에도 꼭 나의 상태를 아는 듯이. 복직까지는 다행히 한 달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이럴 때마다 형제가 당신 혼자냐며, 왜 항상 모든 걸 뒤집어쓰냐고 한마디씩 했다. 아마도 곁에 있다면 내게 같은 말을 했겠지. 석 달 전 우리는 별거에 들어갔다. 부부 사이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아니, 없다고 나는 믿었다. 조금씩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런 건 어느 부부나 마찬가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언제부터 서로가 냉담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작은 균열이 생겼고 그 골이 어느 만큼 크게 벌어졌는지,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입을 열면 마지막엔 상처 된 말들을 두서없이 내뱉었다. 서로에게 조금씩 뒷걸음치다가 벽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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