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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파장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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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미숙 Oct 27. 2023

파장_6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남편 없이 아이가 셋 딸린 엄마는 중견업체 구내식당 조리사로 취직했다. 퇴직할 때까지 매일 남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퇴근길에 가져온 검은 비닐봉지에는 그날 만든 음식들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안방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뒤로하고, 우리 셋은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 그것들을 먹어 치웠다. 오늘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일을 그만둔 후에는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하는 요가를 다녔다. 최근에는 게이트볼도 배웠다.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면 주사를 맞더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처음 나가는 게이트볼 경기를 앞두고 다쳐서 낙심이 컸다.


“오늘이 경기하는 날인데. 이게 무슨 일이고.”

“조금만 참으셔. 곧 걸을 수 있을 거야.”


나는 답답해하는 엄마에게 앵무새처럼 별일 아니라는 듯이 똑같은 말을 매일 들려줬다. 


밤마다 뒤돌아서 잠든 남편의 등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별일 아니야라는 말로 애써 외면했다. 남편의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괜찮아, 별일 아냐를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두려움을 꾹꾹 눌렀다. 그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무관심이 아니라 그것이 남편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다. 각자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침묵의 깊이만큼 우리의 관계도 그만큼 멀어졌다.


기저귀를 채우려고 속옷을 처음 벗겼을 때 엄마가 낯설었다.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속. 새 생명이 만들어지고, 자라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통로가 있는 곳. 내가 가 보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통로. 그곳을 하루에 두세 번 볼 때마다 나에게 매번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한때는 젊었으나 지금은 근육이 모두 사라지고 살가죽만이 남아있는 늙은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밤에 짙은 회색 자동차에서 내리는 엄마를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 베개를 들고 엄마에게 갔던 것처럼 밤마다 엄마 등에 꼭 붙어서 잤다. 더위가 찾아오면 엄마는 나를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엄마는 만개한 꽃처럼 예뻤다. 그 모습이 나를 두렵게 했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엄마. 누군가 그런 엄마를 알아볼까 잠들지 못했던 밤들. 한때 나에게 두려움을 안겼던 엄마의 젊음이 언제, 어디로 증발해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입으로 호호 불기만 해도 엄마는 얇은 종이처럼 허공 속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 조금씩 깊숙한 곳에 감춰 뒀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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