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지 2주가 넘었다. 병원 안은 고장 난 로봇들로 가득한 공장을 연상시켰다. 팔, 다리, 허리, 손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사가 풀린 로봇을 보는 것 같다. 움직일 때마다 붕대를 감아 놓은 곳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와 나는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점점 엄마의 고통에 무덤덤해졌다. 병실의 공기는 탁하면서도 무거웠다. 기저귀를 교체할 때마다 얼른 이 상황이 끝났으면 했다. 엄마가 화장실이라도 갈 수 있다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오빠, 언니는 점점 통화 횟수가 줄었다. 메신저 가족 대화방에서만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내게는 단답형으로 고생한다는 말뿐이었다.
저녁 식사는 5시 30분에 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시간은 더 더디게 갔다. 병원 밖 사람들이 적당한 조명과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일 시간에 병실 안 사람들은 각자 오늘 하루의 지루함에 마침표를 찍은 뒤 무사히 버텼다는 안도 속에서 조용히 잠잘 준비를 했다. 야행성인 내가 병원에서 생활한 후로 엄마가 잠드는 시간에 맞춰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잠들지 않고 할 게 아무것도 없거니와 엄마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도 잠이 들었다. 무료함을 잠으로 메웠다.
엄마는 가끔 인애야, 잘 살고 있니? 하고 나지막이 물었다. 내가 잠이 안 와서 뒤척이면, 엄마는 너 어렸을 때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정말 그랬어? 하면서 추임새를 중간중간에 넣곤 했다. 이야기 중간에 둘의 웃음이 멈추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벌떡 일어나 배를 부여잡고 웃었고, 엄마는 누워서 웃다가 다리가 움직여지면 아파했다가를 반복했다. 그것이 더 웃겨서 둘의 웃음이 계속 이어졌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잠들기도 했고 때론 엄마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었다. 비가 조용히 오는 밤에 엄마가 얕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엄마에게 나의 비밀을 다 토해 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비록 상대방이 듣지는 못하더라도 깊은 밤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하고 싶은 말들 전부를.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처럼 나도 엄마 팔에 매달려 울고 싶었다.
남편은 한 번 왔다 갔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엄마는 별다른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별거는 딸에게도 충격이었으리라. 막 성인이 된 딸은 대학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에 집에 와서 우리의 별거를 알았다. 장막이 걷힌 안을 들여다본 딸은 남편을 닮아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학이 시작됐어도 집에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