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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파장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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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미숙 Oct 27. 2023

파장_9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이 변했다. 매일매일 변화에 촉각을 세우면서 그 변화된 삶 속에 살았다.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두려움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집 안에 강제로 머물렀다. 모든 병원은 가족들 면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재활은 더디게 진행됐다. 우리가 예상했던 입원 기간이 훌쩍 넘었다. 엄마는 여전히 요양병원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다. 면회가 되지 않았기에 전화 통화로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상계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왔다. 출근길에도, 수업 중에도, 한밤중에도. 나는 벨이 울릴 때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나 하는 걱정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벨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항상 다급했다. 언제 집에 갈 수 있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가슴에서 시작한 통증이 점점 강해졌다.

아파트는 외벽에 페인트칠을 새로 해서 산뜻하게 변해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508호분을 만났다.


“엄마는 아직도 집에 못 온가.”

“네. 아직 회복이….”

“세상이 요지경일시. 면회가 안 돼서 친구 얼굴도 못 보다니.” 


 나를 붙잡고 한없이 말하고 싶어 하는 걸 뒤로하고 얼른 엘리베이터를 탔다. 508호분도 같이 탔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 늙은것들은 이리 따라가다가 죽지.”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508호분이 내리고 문이 닫힐 때까지 나는 508호분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로 눈길이 갔다. 

엄마가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이렇듯 파장이 커질지 몰랐다. 지금은 이 파장이 어디까지 퍼져 나갈지 두렵다.


현관문을 열자 탁한 공기가 훅 끼쳤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말해 주듯이 거실은 정리한 그대로였다. 나는 몇 해 전까지 집에 올 때마다 엄마에게 거실 유리문을 없애고 확장형으로 구조를 바꾸자고 얘기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이대로 사는 게 좋아, 이제는 뭐든 변하는 게 무서워야 하면서 유리창을 정성껏 닦았다. 며칠 전 옷 한 벌만 병원으로 가져오라는 엄마의 부탁에 옷을 챙겼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다가 다시 신발을 벗고 베란다로 나갔다. 엄마가 말했던 화분을 찾았다. 두꺼운 푸른빛 잎들이 모여 연꽃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죽지 않고 용케 살아 있었다. 나는 화분을 들고 집을 나왔다.


 엄마는 보지도 못하고 1층에서 요양보호사에게 옷만 전달하고 뒤돌아섰다. 옷을 보낸 지 하루 만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환자복을 입지 않고 본인 옷만 입어요. 603호 할머니 때문에 여럿 힘들어요. 계속 이러시면 저희도 정말 곤란해요.


엄마에게 환자복을 왜 입지 않냐고 물으니, 집에 곧 갈 건데 하면서 끝내 거부했다. 점점 병원 관계자의 목소리는 불친절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마다 병실이 없어 어디로 옮길 수도 없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로 그들의 말을 받았다. 603호 할머니. 엄마는 그곳에서도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렸다. 엄마는 ‘김부덕’인 자신의 이름을 언제부터 잃어버렸을까.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배달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이유로 외출을 꺼렸다. 나의 상황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집과 학교를 자동차로 오가는 게 외출의 전부였다. 조금씩 하던 수업도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면서 외출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갇혔고, 엄마는 강제로 갇혔다.


창가에 있는 화분을 보며 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줄기와 잎을 삽목한다고 해서 새로운 뿌리가 다 나올까. 모두가 자라서 생명을 이어 가는 건 아니다. 그중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버리는 것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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