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여름 더위가 아침저녁으로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잠을 자기에는 끈적거리는 밤이었다. 잠든 나를 누군가가 흔들었다.
얘야 일어나 봐. 엄마랑 봉숭아꽃 따러 가자.
봉숭아꽃이란 말에 무거운 눈을 살며시 떴다. 나는 잠들기 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라고 졸랐다. 엄마 입에서 나온 꽃 이름에 꿈꾸듯이 일어나 앉았다. 옆에는 언니가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내가 다시 잠들까 봐 나를 안고 밖으로 나와 신발을 신겼다. 여름밤은 모두 더위와 싸우느라 이 시간이면 길거리에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큰 도로를 지나 다리를 건너고 골목길을 지나 다시 큰길가로 가는 도중에도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손을 놓치면 영영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은 무서움이 왈칵 들었다. 다리가 아팠지만 말을 삼킨 채 걷고 또 걸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도 내가 없는 것처럼 오로지 길을 따라 걷기만 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폭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엄마는 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걷는 걸까? 점점 불안했다. 벌써 집에서 너무 많이 와버렸다. 꽃은 담장 옆이나 화단에 심어 놓기도 하고 길거리에 꽃이 필 수 있는 조건이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피어 있었다. 캄캄한 밤에 남의 집 담장으로 몰래 들어가 꽃잎을 따지 않아도 되는 흔하디흔한 꽃이다. 가로등 불빛에서 여러 번 꽃을 봤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나는 차마 꽃이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엄마 손에서 절박함을 느꼈다. 엄마는 한참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손안에서 땀으로 축축해진 어린 손을 그제야 보았다. 뒤돌아 걸어왔던 길을 본 엄마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공터에 봉숭아꽃이 보였다. 엄마는 손을 놓고 꽃을 가리켰다. 오로지 이곳에 있는 저 봉숭아꽃을 따러 왔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이 꽃과 잎을 따기 시작했다. 나도 부지런히 손을 놀려 두 주먹 가득 채웠다. 담을 봉지는 가져오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가는 길은 올 때와는 달리 손을 잡지 못했다. 엄마는 느린 걸음으로 나는 빠른 걸음으로 서로를 위해 보폭을 맞추었다. 어느 순간 엄마의 걸음이 빨라지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엄마, 엄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