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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파장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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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미숙 Oct 27. 2023

파장_11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발표지원 선정작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이 꿈에 보였다. 꿈속에서 흘린 눈물이 이불 속에 습기처럼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눈앞이 흐릿했다.


-막내야, 아직도 자냐. 얼른 일어나 출근해야지.


나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거실로 나갔다. 밖은 아직도 캄캄한 밤이었다. 날이 밝으려면 한참을 있어야 했다. 

나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현관으로 가서 운동화를 신었다.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다. 두 다리가 지쳐서 더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동네를 걸어 다녔다. 그동안 흐릿하기만 했던 봉숭아꽃 색깔이 오늘 밤은 선명한 붉은색 꽃송이로 떠올랐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었을 때 느껴지는 감촉. 집에 와서도 한참을 엄마 품에서 잠들지 못했던 마음. 그런 딸을 안고 소리 없이 울었던 엄마의 마음.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엄마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내가 있는 곳과 엄마가 머무는 곳에 대해서, 우리가 갇혀 있는 세상에 대해서. 간혹가다 엄마는 나를 한 번씩 알아보지 못했다. 갑자기 전화해서 엄마 곁을 오래전에 떠난 아빠를, 주변 사람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 


-네가 학교에서 받았던 상장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야.

-혹시나 네 친엄마가 찾아오면 주려 했는데. 네가 착하게 컸다고, 공부도 젤 잘했다고 말하면서. 그 많은 상장을 넣어 둔 상자가 발이 달렸는지 없어졌다.

-인애야, 미안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집에 왔을 때, 엄마는 인사만 받고 안방으로 가서는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모든 서랍과 장롱 안을 열더니 그것도 부족해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때부터 엄마는 생각날 때 수시로 사라진 그것을 찾았다. 무엇을 찾느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어린 날 매일 품에 안고 있었던 인형, 주머니 속을 가득 채웠던 유리구슬처럼 잠시 외면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겠지,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잊었으나 나를 언제나 기다려 줄 거라는 믿음. 그러나 정작 찾았을 땐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두꺼운 먼지 속에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 스스로 소멸한 것처럼. 뒤늦은 후회와 가슴 넓게 퍼지는 허전함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다급한 마음에 요양병원을 찾아갔으나 면회 불가라는 안내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나는 가족 대화방에 엄마의 상태를 말한 뒤 퇴원을 의논했다. 조금만 두고 보자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며칠 뒤, 엄마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전화가 왔다. 면회는 더더욱 금지였다. 결국 엄마는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했다. 이별은 갑작스레 다가왔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이별 앞에서 나는 익히 겪은 듯한 깊은 상실감과 서글픔에 주저앉았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사라져버린 것을 끝까지 찾으려 했던 엄마처럼, 나 또한 지금의 자리에서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고 있다. 


기나긴 여름이 끝이 났다. 화분에는 이쁜이가 자라고 있다. 나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이내 그것을 쑥 뽑아서 묻고 싶다.


‘너는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며 잘 자라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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