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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Feb 02. 2024

글은 펜으로 쓰지만 책은 송곳으로 쓴다

출판을 공부하며 가장 자주 보고 들었던 말은 "뾰족하게! 송곳처럼 날카롭게!"였어요. 예상 독자층도 뾰족하게, 콘셉트도 날카롭게. 모든 사람을 위한 두루뭉술한 기획은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책은 팔려야 하니까요.  


마케팅에서도 똑같은 걸 배워요. 신제품을 기획, 홍보할 때는 틈새시장을 분석하고 뾰족하고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한다고요. 결과론적으로 모두가 사용하는 제품이 탄생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모두가 사용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물건을 만들면 망하기 마련이라고요. 그간의 경험을 종합하면 '글은 펜으로 쓰지만 (사실은 자판을 두드리자만) 책은 송곳으로 써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라요.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 대형 출판사에서 제 출간 기획서를 거절하며 보내준 피드백의 내용도 다르지 않아요. 저만의 고유한 경험을 살려 좀 더 뾰족하게 다듬어 보라고요. (피드백 요약본을 구경하실 분은 아래 링크로 가주세요. 책 쓰기를 기획하시는 분들에게 유용한 팁이 될 거예요.) 


https://brunch.co.kr/@songyiahn/705


한번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실래요? 매일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광고에, 제품에, 책들 사이 사람들이 서 있네요. 여기 좀 봐달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치는 메시지에 어디로 고개를 돌려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그들의 옆구리를 송곳 들고 콕콕 찌르는 거죠. 그러고는 조용히 물어요. 


"이 책 어때요?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그렇게 찔러야 비로소 독자가 쳐다보기라도 합니다. 책의 서문까지 읽게 하려면 제목과 콘셉트를 더욱 뾰죡하게 다듬어야 하겠지요. 좋았어요. 뾰족하게! 근데 어쩌란 거죠? 연필깎이로 깎을 수도 없는 데 말이에요.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 보자


여러 차례 출간에 도전하고 공저 포함 6권의 책을 내며 내린 결론은 하나예요. 타깃을 좁힐 수 있을 때까지 좁히고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요. 여전히 알쏭달쏭한 분들을 위해 예시를 들어볼게요. 


만약 육아 지침서를 낸다 쳐봅시다. 사실 육아 지침이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 아빠가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겠지요. 근데 그런 책은 벌써 넘치게 많아요. 그럴 때 주요 타깃과 상황을 송곳처럼 파고들다 보면 이런 콘셉트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육아 지침서

 ↓

바쁜 엄마 아빠를 위한 육아 지침서 

바쁜 엄마 아빠가 하루 5분씩 펼쳐보는 육아 지침서 

아이가 하원하기 5분 전 펼쳐보는 육아 지침서 


육아가 힘든 건 시간과의 전쟁이기 때문일 거예요. 일하는 엄마, 아빠라면 두말하면 잔소리고 전업엄빠라 해도 하루는 눈 깜짝할 새에 가버리잖아요. 그런 부모를 대상으로 해서 하루 5분씩만 읽어도 도움이 될만한 짤막 짤막한 육아 정보를 전달하는 책으로 <아이가 하원하기 5분 펼쳐보는 육아 지침서>라는 콘셉트를 잡는다면 어떨까요? 


최소 <바쁜 엄마 아빠를 위한 육아 지침서>라는 콘셉트보다는 손길이 더 갈 것이라 생각해요.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불현듯 생각날지도 모르죠. 이 콘셉트에는 또한 타깃층이 좁혀져 있어요. 하원을 한다는 것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돌아온다는 뜻이니까 책에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유아들을 위한 육아 관련 내용이 등장하겠지요.  


구체적인 질문으로 시작해도 좋아


구체적인 상황 대신 구체적인 질문을 한 예도 있어요. 이번에 제가 출간한 『이 많은 짐은 다 어디서 왔을까』는 '엉뚱하고 호기로운 미니멀 라이프 도전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책의 내용은 맥시멀리스트였던 제가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집정리를 해나가다가 겪은 놀라움, 깨달음 등이 펼쳐 쳐요. 그 과정에서 제 머릿속엔 여러 질문이 떠올랐어요.  


이 많은 짐은 다 어디서 왔을까?

왜 우리는 공기를 마시듯 생각 없이 소비를 할까?

언제까지 이런 소비를 반복하게 될까?

쟁여놓은 물건을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컵을 한 사람 당 3개씩 남기고 다 버리면 불편해질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제가 찾은 답이었어요. 제목 역시 그중 하나를 골라 정하게 된 것이고요. 가장 한숨 쉬며, 부끄러워하며 했던 질문이자 책 전체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어요. "여러분들의 집에 있는 그 많은 짐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봅시다"라고 손길을 내민 거죠. 


송곳을 손에 쥐고 있어도 어느 곳을 찔러야 좋을지는 찔러봐야 알아요. 결국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다방면으로 생각을 펼쳐보고 접고 늘리고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늘 피곤한 이유 중 하나는 송곳 같은 뾰족한 콘셉트로 단단히 무장한 상품들이 여기저기서 찔러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책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써보자


얼마 전 유럽 회원들로 구성된 북클럽에서 제 책으로 독서토론 및 출간기념회를 했어요. 그중 한 분이 날카로운 질문을 해주시더라고요. 책을 내기 전에 제가 북클럽 카톡방에 가끔씩 글 한 편씩 던진 적이 있거든요. 읽어봐 달라고요. 회원 중 몇몇은 제 책 원고의 일부를 미리 읽은 셈이죠. 


"영글음 님, 글 한 편씩 읽을 땐 몰랐는데 책 한 권을 통으로 읽으니 전체 글에 척추가 생긴 것 같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지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어요. 그게 바로 기획의 힘이라고요. 기획을 통해 하나의 중심줄기가 생기고 각 부마다 가지치기를 해서 글이 포도송이처럼 매달리게 되는 거라고요. 기획을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일 거예요. 그중에서 제가 쓰는 방법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앞서 이야기한 뾰족한 주제와 콘셉트, 가제 등을 잡았다면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에 앞서 하나를 더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내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는 거예요. 그 문장 그대로 책에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다만 원고를 쓰면서 계속 염두에 두고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어떤 구성을 택할지, 어느 부분에서 힘을 줄지 생각해야 해요. 


다시 저의 책을 예로 들어볼게요. 『이 많은 짐은 다 어디서 왔을까』에서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어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며
지금으로도 충분하니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자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제가 집 정리를 해내가는 과정을 집어넣게 되었고, 물질적인 것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2부에서는 '소비'를 파고들었어요. 뒷부분에 가서는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과 그걸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렸고요.   


그러니까 8화의 글과 오늘의 글을 요약하면 책을 쓰려면 1) 쓰고 싶은 그러나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를 정하고 2) 다른 책과의 차별화를 위해 콘셉트와 가제, 타깃층을 뾰족하게 다듬은 뒤 3)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정리하여 4)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집어넣으면서 원고를 쓰면 되겠습니다.   


복잡해 보이면서도 쉽고, 쉬워 보이면서도 복잡한 결말인가요? ^^ 오늘도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째려보며 책 쓰기에 고군분투 중인 수많은 예비 작가님들, 기존 작가님들에게 "함께 힘내자"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작년 말에 까였다고 소문냈던 출간 기획서를 다듬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출간한 『이 많은 짐은 다 어디서 왔을까』는 지난 1년간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겪은 좌충우돌의 경험담과 우리 시대의 소유와 소비에 대해 깨달은 점을 기록한 책입니다.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책 소개를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millie.page.link/Hx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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