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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운영을 맡아달라고요?

챕터 2

by 이이육

모임에서의 한 달간 느낀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돈을 내고 노래를 배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노래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수업을 듣고 느낀 점은, 발성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학원을 다녀보는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노래를 내지르는 것과 학습한 호흡법을 지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물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본 목적이기도 하면서, 학원 수업의 덤으로 따라오는 커뮤니티 활동도 좋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수강생들이 모여 하는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매 달 개근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박수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무대를 보며 동기부여를 받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저녁 식사 시간이 있었다. 학원 로비에 모여 음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시간 이외에는 별다른 행사랄게 없어, 친한 이들끼리 삼삼오오 흩어지곤 했다. 9시쯤 학원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자리를 계속하고싶은 학원생들은 끼리끼리 모여 학원을 떠났다. 강사까지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는 학원도 있는 시국에, 내가 다니는 학원은 어떤 부분에서는 건전한 편이었다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맞는 이들끼리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건 명확한 장점 같다. 반면 음악 취미를 이어나가고 싶은 사람, 학원을 오래 다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정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한 달간의 사이클이 전부였다. 한 달간의 수업을 듣고 공연을 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또 다른 수업을 듣고 공연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엔딩을 본 게임을 계속 처음부터 플레이하며 “할 게 없다.” 말하는 사람처럼, 몇 달 학원을 다닌 나는 컨텐츠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다니며 음악 취미를 깊게 파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학원을 오래 다닐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친한 수강생들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오래 다닌 학생들끼리 자연스럽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이나, 학원 공연 이외에 공연이나 버스킹의 기회가 학원 차원에서 이뤄졌으면 했다. 음악에 관심이 많고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기껏 만나기 힘든 사람들끼리 모여 할 게 없어 흩어지기는 아쉽다는 것이었다.

아쉬운 점에 대해 서로 투덜대기만 하고 끝내면 험담에 불과한 것이다. 종종 학원 원장님께 장기 수강생이나 더 심화적인 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할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건의드렸다. 모임에 가입했을 때, 팀장을 맡으면서 원장님과 직접 소통할 일이 많았다. 모임원 입장에서 바라본 음악모임, 학원생 입장에서 바라본 학원에 대한 피드백을 여러 차례 드렸고, 원장님께서도 항상 경청하고 수용할 부분은 수용해주셨다. 그렇기에 부족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드릴 수 있었다. 원장님도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추진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강사들에게 추가 잔업을 시키면 급여가 더 나가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는 육아가 한창이셨기 때문에, 정시에 퇴근을 하고 육아를 위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이미 학원은 영업이 충분히 잘 되고 있었다. 굳이 장기 회원을 잡아두지 않더라도, 한 달간의 커리큘럼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학원에 지속적으로 유입된다면 매출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장기 수강생을 위한 컨텐츠를 구상하는것은 사업적으로는 필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사업적으로는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제안을 경청하느라 시간을 할애하신 원장님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점이 첫 번째 사실. 그리고 두 번째 사실은 이 지점이 바로 글의 제목에 나온, 내가 운영하게 된 음악 모임이 시작하게 된 순간이라는 것이다.

건의사항을 늘어놓던 나에게, 학원 원장님께서 어느 날 제안을 하셨다. 학원생을 대상으로 자작곡 소모임을 운영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 혼자 끄적거린 몇 개의 자작곡이 있다. 학원에서 음악이라는 주제로 소통할 타인이 생겨서 세상에 내어놓기 전까지는 혼자 품고 있던 자작곡들이었다. 그런데 학원에도 나와 비슷하게 자작곡을 쓰는 사람이 두세명 있으니, 함께 모여 소통하는 소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 하셨다. 자작곡을 쓰는 아마추어는 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동했고, 그렇게 학원 안에서 모임을 운영하게 되었다. 자작곡을 쓰는 사람 두어 사람과 학원 생활을 하며 나와 가까워진 사람 두어 사람, 그리고 자작곡 쓰는 법을 알려주는 모임인 줄 알고 들어온 몇몇 사람, 그렇게 학원 내에서 모임 운영이 시작된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자작곡을 쓰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나의 욕구와, 운영의 부담 없이 학원 안에서 컨텐츠를 만들고 싶은 원장님의 필요가 맞닿았기 때문에 모임이 성사된 것이다. 무보수로 모임 운영을 맡게 된 이유는, 내가 보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일 것 같기도 하다. 굳이 계산적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보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임 운영 관련해서 학원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면서, 편의는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제공받은 편의들은 다양했다. 당장 학원 건물을 고정적인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었다. 모임을 운영할 때 고정적인 모임 장소가 주는 안정감은 꽤 크다. 매 모임 장소에 대한 고민을 크게 덜어준다. 고정적인 장소를 마련하는데 따른 비용이 큰 것이 문제지만, 있으면 무조건 좋은것이 아지트인 것이다. 물론 아지트가 없이도 잘 운영되는 모임도 많다. 하지만 그냥 모임이 아닌 음악 모임인 것이 문제다. 음악 모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아지트가 없었다면 매 모임 때마다 소음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임 장소를 찾아 나서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원 건물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또 신규 회원 모집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점도 큰 메리트였다. 왜냐하면 학원에서 원생을 대상으로 모임 홍보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학원의 한 달 커리큘럼 외에 더 많은 활동을 하고싶은 원생, 또는 학원을 잠시 쉬어가고 싶어하는 원생을 대상으로 가입 권유가 이뤄짐으로서, 학원 입장에서는 원생에게 좋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모임 입장에서는 신규 회원 유입의 장치가 되었다. 비록 그 경로를 통해 많은 사람이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모임 홍보를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는 않아도 되는 느낌이어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러한 메리트들이 있었지만, 학원에서는 운영 측면에서 큰 간섭을 하지는 못했다. 원장님께서 모임을 존중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보수를 받지 않았기에 좀 더 모임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원에 소속된 모임을 운영함으로서, 몇 가지 편의를 제공받았다. 그로 인해서 수고를 덜 수 있었고, 초창기 모임의 연착륙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보수를 받지 않았다. 영리를 추구하는 학원에 소속된 모임을 운영하면서 보수를 받지 않은 것이 무급 노동이나 봉사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 보수를 받지 않은 덕분에 학원의 편의를 제공받으면서도 간섭 없이 모임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취미 생활을 한다면 이런 소소한 댓가를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페이공연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노래 대신 돈을 주는 사람의 입맛대로 노래해야 하는 것이다. 모임 운영의 댓가를 받았다면 분명 간섭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음악 모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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