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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준비

챕터 4

by 이이육

“중대 발표”를 하겠다며 모임원들을 한 데 모았다. 마침내 모임을 정리하는 것이냐, 아쉽다는 반응이 있어서 다행히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선지가 주어졌지만 선지가 주어진 것이 맞는지 애매한 현 상황에 대해 모임원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듣고 난 모임원 대부분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내야 할 돈은 늘어나는데 앞으로의 모임 활동이 더 좋아질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결이 맞는 이들과 함께 음악으로 소통하는 점이 우리 모임의 매력인데,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여과 없이 수용하게 되면 모임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 자명했다.

다만, 아쉬움은 있지만 딱히 선택지가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학원으로부터 댓가를 받는 대신 학원에서 원하는 사람을 모임에 들일 것인지, 아니면 기존처럼 계속 운영하겠다고 주장하고 학원과 편치만은 않은 동거를 이어가거나, 결국에는 학원을 떠나야 하는 것인지,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모임은 예전같을 수 없는 것 아닌지,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고, 의견이 갈렸다. 다양한 이들이 모였으니, 의견이 갈릴 수밖에 는 없는 것이다. 그 모든 의견을 수합해서 나아가야 하는것이 민주주의의 어려운 지점인 것이다.

다행히 가지각색의 의견이 개진되는 동안 한 가지 의견은 모두 일치했다. 어쨌든 내 결정을 따르겠다는 것. 이렇게까지 나를 신뢰하다니... 어쩌면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지도... 그렇게 됨에 따라 조금 더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여럿의 생각을 수렴해 내리는 판단이라면 책임을 나눠서 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내 판단으로 내리는 결정이라면 그 결정에 대한 책임감도 오롯이 내가 져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원과 계속 함께한다면, 모임은 학원에서 제공하는 편의들을 누릴 수 있을 것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고정적인 모임 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가입 홍보 등 운영상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편의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들여다볼 부분이 있었다. 사용하는 학원 시설은 시간 제약이 있었다. 늦어도 학원 영업 시간인 저녁 10시까지만 사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학원이 쉬는 일요일은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저녁 10시를 넘어서 모임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늦게까지 하는 카페로 자리를 옮기곤 했었다. 또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휴일에 모여야 했는데, 휴일 이틀 중 하루인 일요일에 시설을 쓸 수 없는것도 제약이었다. 일요일에 모이고자 할 때도 다른 모임 장소를 섭외해야만 했다. 그리고 학원 행사나, 로비에서 레슨을 할 때도 시설 이용이 어려웠다. 특정 시간대만 제외하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그 특정 시간대가 실질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대부분의 시간이라면, 그렇게 매력적인 조건은 아닌 것이다. 학원의 가입 권유를 통해 들어온 회원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가입을 원하는 학원생 중 모임에 들였을때 쉽지 않을 것 같은 이들도 종종 있었다. 가입 홍보를 안 하는것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메리트들의 이면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나쁠 것 없다고 타협하며 운영해오고 있었는데,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되니 그 메리트들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학원에서 원하는대로 모임을 운영에 변화를 주면, 결국 원치 않는 회원도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귀한 시간을 내서 모임을 하러 온 모임원들에게, 결이 안 맞는 사람을 맞딱뜨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모임원보다도 나 스스로가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즐거우려고 하는 모임인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힘들 것이 뻔할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학원에 남음으로서 제공받는 메리트들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좋지도 않은 것들이었고, 대신 생기는 변화는 모임을 나쁘게 만들 것이 자명했다. 계산기를 충분히 두들겨본 뒤, 학원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원장님께서 학원을 떠나게 되더라도 즐겁게 모임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앞에서 몇 번 강조했듯 원장님은 참 좋은 분이신 것이다. 더욱 마음에 부채감 없이 학원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모임 생활을 시작한 학원을 떠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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