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3
거의 반 년 정도 모임을 운영하면서 중심이 잡혀갔다. 모임에 고정 멤버도 생기고, 매달 돌아가는 프로그램도 설명하지 않아도 계속 진행이 되고, 그럴수록 모임의 중심이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운영의 페달을 조금 살살 밟아도, 관성에 의해 모임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주먹구구로 운영한 부분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대학교때 밴드 동아리 집행부는 해봤지만,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건 처음이었으니깐. 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두 가지는 확실히 신경쓴 것 같다. 신규 회원 가입 단계, 그리고 모임의 정기적인 프로그램 정착. 그런데 운이 좋게도 두 가지가 정말 중요했던 것이다.
모임에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가입을 거절하는 것이 맞지 않는 회원을 쫓아내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것은 진리이다. 어느 모임이나 집단이든, 심지어 인간관계에도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대학 시절 밴드 동아리를 운영할 때도 대부분의 고민거리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었다. 성향이 안 맞아서 일어나는 다툼은 그래도 자연스러운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규칙을 어기고 합주실을 맘대로 쓰거나, 공연 준비를 안 하거나, 갑자기 연락두절이 돼 버리거나, 기본적인 원칙을 안 지키는 것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는 힘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모임에 맞지 않는 사람”은 사실 “기본적인 원칙은 잘 지키는 사람”의 다듬어진 표현인 셈이다. 성격이 모난 데가 없는지, 기본적인 원칙을 잘 준수하고 점잖은지, 나를 포함한 기존 회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고려했다. 몇 가지 기준들을 세우고 그것과 맞지 않으면 더 고민하지 않고 가입을 받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징후들로 지레짐작해 좋은 사람을 돌려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 때문에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집처럼 편해야 하는 모임이, 들어가기 싫은 집구석처럼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사람 간의 문제에 처했을 때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취하게 된 방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더라도 모임의 누군가는 나만큼 모임에 취약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어떤 사람과 안 가까워지는것이 사람을 떼어내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니깐.
그 다음으로 신경쓴 부분인 정기적인 프로그램은 모임의 뼈대와 같다. 매 달, 혹은 분기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가 있으면 그것을 고려하며 모임원들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 중인 모임에는 매 달 커버곡이나 창작곡을 하나씩 제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회원들끼리 컨텐츠를 공유하고, 월말 회의때 제출자들을 대상으로 경품 뽑기를 한다. 자연스럽게 월 초에는 제출할 곡에 대해 생각하고, 연습하고, 녹음을 한다. 이런 과제의 경우 함께 호응하지 않으면 재미가 떨어지는 법인데, 경품이 있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해도 이미 참여한 사람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구조다. 이렇게 주기를 두고 운영되는 과제는 모임원들을 계속 굴러가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운영진이 모임에 신경을 덜 써도 괜찮아지는 것이다.
모임이 흘러간 반 년 동안, 모임과 결이 맞는 학원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매달 커버곡을 내기도 하고, 모여서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대부분은 머리를 비우고 보드게임을 하기는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열심히 음악 활동하는 모임이 아닌 그냥 음악 모임이었기에, 잘 어울릴 수 있는 원만한 성격을 하고 있으면서 또 음악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친해지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모임이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그런 순간 문제가 찾아온다!
영원한 건 절대 없는 법. 반년간 밀도를 높여 가며 굴러가던 모임에게도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 순간은 학원 개편과 함께 찾아왔다. 학원의 시스템을 다양하게 손보면서, 모임에도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찾아든 것이다. 아무리 보수를 받지 않더라도 결국은 학원에 종속된 모임이었기에, 개편의 방향에 맞춰 함께 움직여야만 했다.
가장 큰 요구사항은 과거 학원에서 운영하던 모임에 가입했었던 회원들을 지금 내가 운영중인 모임에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책의 맨 처음에서 언급한, 이 학원에 처음 발을 딛게 한 과거 그 모임 말이다. 그런데 과거 그 모임원 중 일부는 내가 운영중인 모임에 가입해 활동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 외의 다른 사람들 중에는 모임 운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대신 학원에서는 제안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댓가를 제안했다. 회원 한 명당 일정 금액을 지급해주는 것으로 운영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학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학원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고객들을 동호회라는 완충지대를 통해 학원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운영에 공을 들이는 보상을 챙길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학원과 나, 둘 다 손해볼 것 없는 것 같은 거래 같았다. 일이 잘 풀렸다면 쏠쏠한 부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모임원들과 상의를 했다. 운영 방식 변경과 함께 학원에 납부하는 모임 회비의 인상도 함께 이루어질 예정이었기에, 더욱이 기존 모임원들과의 상의가 필수였다. 제안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어느 선택을 해도 모임은 지금과 같을 수는 없는 상황,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라도 모임원들과 상의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