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음악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모임까지 운영하게 되었냐며, 대단하다는 듯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 반응들은 사회적인 리액션일수도 있지만, 아예 없는 말은 하지는 않을테니 기분좋은 칭찬으로 듣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임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누군가 내 등을 떠밀 때 버티고 서 있지 않는 성격이라서, 저항 없이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
모임은 모여있으니 모임인 것이다. 나보다는 타인의 존재가 모임을 결정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모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괜찮은 컨셉만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컨셉을 잘 고르고 그것이 모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뤄진다. 음악이라는 주제로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나도, 처음에는 음악 모임을 가입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다만 노래방 모임이나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모임, 음악의 탈을 쓴 단순 친목 모임은 가입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큰 행운이 따랐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 등을 살짝 떠밀었고, 저항 없이 앞으로 밀려나가며 모임을 만들었고,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큰 행운이 따른 것이다. 물론 그렇게 모임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렇게 만든 모임을 운영해나가는 일이 훨씬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첫 단추는 실용음악학원에 있는 음악 모임을 운영하게 된 시간부터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학원에 속한 모임을 운영하는건 흔한 일은 아니다. 실용음악학원의 강사나 총무라서 그런 것이라 추측할 수 있지만, 아니다. 나는 그냥 학원 수강생이었다. 수강생이 어쩌다 학원에 속한 모임을 운영하게 된 것인가, 보수를 받고 일하기로 한 것일까? 다양한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다른 것들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 언급하자면 모임 운영에 대한 보수는 전혀 없었다. 학원비 할인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차차 설명해보겠다.
당연하게도 첫 시작은 실용음악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학원 수업을 등록한 것은 아니고, 학원에서 운영하는 음악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앞에서 살짝 말했듯 나는 재미있는 음악 모임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대학교때 밴드 동아리를 너무 즐겁게 해서, 졸업하고 나서도 음악 취미의 맛을 잊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다. 동아리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관심과 공연이 찾아와 음악을 열심히 할 동기가 되어주었는데, 방구석에서 혼자 음악을 하니 타인의 관심도 동기도 줄어들어 음악 취미가 예전보다는 조금 재미없어졌다. 음악이라는 취미를 놓지는 않았기에, 교류할 수 있는 타인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을 찾아 나섰고, 기피하던 대상 중 하나인 “학원에서 운영하는 모임”을 가입하게 됐다. 이유는 내가 원하는 조건에 딱 맞는 모임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이라 안 그래도 모임이 적은데, 이런저런 조건을 다 걸어보면 남는 모임이 없었다. 진중함이 조금 떨어져 보이거나, 음악을 빌미로 한 만남 모임보다는 차라리 학원에서 운영하는 모임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달간 모임 활동을 했다. 다 큰 성인이 되어 하는 모임은 재미있었다. 회사, 지인, 집콕,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 다른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운영의 주체가 학원이다 보니 모임의 진입장벽을 낮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른 한계도 확실했다. 음악에 너무 관심이 큰 사람과 음악이라는 카테고리로 그냥 사람 - 주로 이성 - 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목적이 다른 것이다. 목적이 다른 둘을 한 팀으로 묶어두니, 서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이탈자가 생겨났다. 망하는 길로 접어드는 조별과제와 같이 연락두절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고, 자꾸만 생겨나는 빈 자리는 열심히 하던 사람들의 열의를 식게 했다.
진입장벽이 없는 모임이 가지는 한계들을 느끼고 나니 모임이 속한 실용음악학원의 수업을 들어보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 속한 입장에서, 심리적인 담장 너머로 본 학원 수업과 행사의 분위기는 좋아보였다. 학원비라는 진입장벽을 넘은 수강생들이라 그런 것일까, 아무나 할 수 있는 모임의 모임원보다는 더욱 열의가 넘쳐보였다. 그렇게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학원에서 운영하는 모임은 홍보의 수단일 뿐이군, 누군가는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학원의 모임은 수강을 강요나 유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학원 홍보를 안 해서 의아했다. 하지만 모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학원 시설을 이용하고, 오며가며 학원생 집단의 분위기를 느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원을 등록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보하지 않되, 잘 운영되는 학원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한 것이 노림수였다면 정말 고단수인 것이다. 아니, 그건 애초에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 노림수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학원에서 운영하는 음악 모임은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학원에서 운영하는 음악 모임에 가입하고, 한 달 뒤 학원에 등록했다. 제 3자가 보기에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행보인 것이지만, 직접 겪은 나로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 모임까지 운영하게 된 것이다. 꺼려지는 것을 재기만 하다가 결국 안 하기보다는, 겪어보면 생각했던 문제점이 정말인지 알아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충분히 재미도 챙길 수 있는 것 같다.